2008년 키코(KIKO) 사태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을 앞두고 산업은행의 국책은행 역할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은행권이 키코 피해기업에 대한 보상에 주저하는 상황에서 국책은행인 산은의 역할에 따라 수많은 중소기업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은행별 키코 가입업체 수는 총 1047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산업은행(22곳)과 기업은행(79곳)이 키코를 판매한 업체는 99곳으로 10곳 중 1곳은 국책은행에서 키코에 가입해 피해를 봤다.
민간 은행권에서는 KEB하나은행에서 키코에 가입한 이들이 386곳에 달했으며, 뒤이어 씨티은행(177곳), 신한은행(166곳), 국민은행(105곳) 등도 100곳이 넘는 기업에 키코를 판매했다. 이밖에 SC제일은행(70곳), 우리은행(17곳), 부산은행(12곳), 농협은행(4곳) 등도 키코 판매에 동참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구간 내에서 변동하면 기업이 이익을 보지만 구간을 벗어나면 사실상 무제한으로 손해를 입는 환리스크 헷지 상품이다. 2007~2008년 은행들의 권유로 중소기업들이 키코에 가입했고,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많은 중소기업의 피해를 불러왔다.
피해기업들은 이에 은행을 대상으로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은 2013년 불완전판매의 소지는 있으나 “키코상품이 사기 상품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후 키코 사태에 대한 보상 문제는 친기업 성향의 정부가 계속되면서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키코는 은행과 기업의 정보 비대칭성을 악용한 상품으로, 대표적인 금융적폐 사례로 꾸준한 지적을 받아왔다.
키코 사태가 변화를 맞이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개혁성향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을 임명한 이후부터다. 학자 출신인 윤 원장은 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에 집중해 4개 키코 피해기업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했고, 조사결과를 분쟁조정위원회에 상정할 것으로 밝혔다. 분조위의 조정안에 따라 은행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피해보상 비율이 결정된다. 4개 기업의 피해는 1500억원에 달한다.
다만 문제는 분조위의 조정안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 은행이 수용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은행들은 키코 사건의 법정 소멸시효가 경과하고, 배임의 우려가 있어 손해배상에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은행들이 조정안 수용에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재조사 결과의 분조위 상정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따라서 피해기업들은 국책은행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특히 이번에 분조위에 상정되는 4곳의 키코피해 기업 가운데 일성하이스코는 산은에서 키코를 판매한 기업이다. 이에 따라 키코 피해기업들은 산은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조정안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촉구하고 있다.
키코 공대위 관계자는 “국책은행은 민간은행과 역할이 다르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포용금융 정책에 따라 국책은행이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산은은 조정안이 나온 후 수용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히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키코 문재는 조정안이 나온 후 입장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