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피해!”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앞장서 돌을 던지던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이미 몸을 돌려 도망치고 있었다. 황급히 몇 발자국 떼자마자 등 뒤에서 펑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기자가 서 있던 곳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준 발사한 모양이었다. 프레스를 향한 공격에 분개해 발사한 곳을 올려다보니 한 이스라엘 군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30미터 가량 떨어진 건물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군인도 기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앳된 얼굴이었다.
팔레스타인 북부의 대도시 나블루스. 이곳에서 14여킬로미터 가량을 더 달리면 산지에 위치한 쿠파카둠 마을이다. 지난 16일 오전 12시30분께(현지시간) 쿠파카둠의 금요집회에 가고자 산길을 한참 달렸다. 쿠파카둠과 나블루스 사이의 거리는 2km 정도로 매우 가깝지만, 이스라엘의 정착촌이 만들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착촌을 연결하는 도로가 조성되면서 마을에서 나블루스로 가는 길이 봉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동을 위해서는 빙 돌아가야만 한다.
금요집회는 이러한 봉쇄 조치를 항의하기 위한 자리다. 매주 금요일 무슬림 예배가 끝나면 집회가 시작된다. 자그마치 10년. 집회에 참석코자 전 세계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엔지오 아디의 이동화 국제활동가는 “쿠파카둠의 사례는 팔레스타인 내 속속 조성 중인 이스라엘 정착촌이 팔레스타인인에게 끼치는 해악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유혈사태가 매우 많이 발생했습니다. 초기 진압 과정에서는 집회 참가자를 향한 실탄 발포와 신체에 직접 최루탄을 발사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최근까지도 해산에 불응하는 현지 및 국제 활동가에 대한 연행과 구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루탄은 지역 아동들이 상당한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최루탄이 집안으로 발사돼 2살 유아가 병원에 이송되는 일도 있었죠.”
◇ 돌팔매 vs 최루탄·고무탄
현장에 도착했을 때, 폐타이어 더미가 불타고 있었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그곳이 곧 사선(死線)이었다. 마을 주민 대표에게 집회에 설명을 듣는 사이 집회 참석자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현지 매체들도 속속 도착했다. 행진이라고 해봤자 700미터 가량을 정착촌 방향으로 걷는 게 전부다. 동선은 단순한데, 현장 상황은 간단치 않았다. 군데군데 부서진 담장과 검게 불탄 자욱이 즐비했다. 그간의 격렬한 저항과 진압의 흔적일 터.
오후 1시 시위대가 동요했다. 시위대의 꼬리부분, 이른바 후방지역에 이스라엘 군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흥분한 청년 열댓 명이 돌을 던졌다. 돌팔매에 군은 최루탄으로 응수했다. 찢어지는 듯 한 폭발음이 터졌다. 시위대 일부가 몸을 돌려 도망갔다. 매캐한 최루연기가 바람을 타고 시위대로 덮쳤다.
이윽고 본격적인 행진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모자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남성이 마이크로 행진을 독려했다. 참석자의 면면은 각양각색이었다. 반바지, 반팔 차림의 동네 꼬마부터 자녀와 손을 잡고 나타난 아버지, 여기에 유럽 등지에서 온 국제활동가, 현지매체 기자와 프리랜서 언론인까지. 한 구석에서 돌팔매질을 위해 돌 깨는 현지 청년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들 중에 얼굴을 가린 이들이 많았다. 상공에 띄운 드론에 의한 채증이 이뤄지고 있어 훗날 체포 등을 피하고자 얼굴을 두건으로 가린 것이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남성이 선봉에 섰다. 그의 뒤를 쫓고 있으려니, 현지 기자가 다가와 “너무 앞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돌멩이가 팔레스타인 청년의 손에서 ‘쉭’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멩이. 한 명이 던지면 이어 다른 이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집회 초반 의욕에 넘친 외국인 참가자 두 명이 양손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자, 이스라엘 군인들이 위협적인 손짓을 나타냈다. “돌아가라”는 경고였다. 이 모습을 본 시위대 선두 그룹이 소리쳤다. “자극하지 말라고. 뒤로 빠져!”
돌을 던지는 시위대에게 군인들은 최루탄을 쏘아댔다. 선두에 선 이들은 군중심리로 인해 ‘선을 넘는 것’을 우려하는 모양새였다. 혹시 모를 유혈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펑’하며 터지는 최루탄 소리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고무탄도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건물 뒤로, 자욱한 화염 사이로 비치는 군인의 그림자가 공포스러웠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현지 거주민들은 지난 10년간 극한의 감정과 위협을 겪고 있었다.
“친구, 괜찮나?” 초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던 현지 기자가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넸다. ‘문제없다’고 대꾸하자, 그가 다시 등을 툭 쳤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직 해는 머리 위에 있었다. 저무는 하루의 끝, 이날 이스라엘 입장에선 ‘사나운’ 전사들이란, 누군가의 아비이자 아들이다. 이들은 최루가루를 툭툭 털어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빵을 구워 식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입을 맞출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돌아오는 금요일이 되면 이날처럼 치열한 하루를 반복할 것이다.
◇ 존엄이 보장되는 삶
“우리의 바람은 평등, 자유, 정의, 존엄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가난한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주 수입원인 올리브 수확철이 되면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어집니다. 정착민들은 군의 비호로 농부들의 삶을 방해하고 있죠. 때문에 우리의 땅을 보호하고 이런 상황을 전 세계에 바로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블루스의 지역 시민단체 ‘탄위르’의 요셉 박사의 말이다. 지난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체결한 오슬로 협정이후 서안지구는 A, B, C지역으로 나뉘어 이스라엘의 영향 하에 놓여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전 방위적 지배하에 있는 C지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피해에 대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요셉 박사는 “팔레스타인 풀뿌리 시민의 방어와 국제연대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쿠파카둠 금요집회에서 알 수 있 듯 이스라엘을 향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은 곧 체포와 구금으로 이어진다. 남편이나 아들 등 남성이 구속되면 당장 생계의 위협에 직면한다. 가장의 부재 때문에 가계를 돌봐야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다. 별 수 없이 요르단계곡 등에 위치한 이스라엘 정착촌에서의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노동의 대가는 턱없이 낮다.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하고 수중에 쥐는 돈은 10달러 가량. 현지 최저임금보다 적다. 탄위르의 와엘 활동가는 “이 같은 상황이 팔레스타인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수적 피해도 심각하다. 이스마트 팔레스타인 여성연합위원회 대표 겸 알나자대학 교수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체포되면) 가족 전체의 피해로 이어지는데, 남편이 반이스라엘 집회 등으로 인한 수감 경력이 있다면, 연좌제로 인해 배우자 및 자녀들의 해외 출국 등을 위한 여권 비자가 중단된다”고 설명했다.
와엘 활동가의 증언은 더욱 충격적이다. “감옥 관계자는 면회를 온 여성에게 성적으로 폭력을 가할 수 있다고 위협합니다. 그러면 충격을 받은 여성이 울음을 터뜨리죠. 그 소리를 옆방의 수감자에게 듣게 해 수감자가 저항 의지를 잃고 포기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한편,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문제로 골머리를 겪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특히 현장에서 팔레스타인인을 맞닥뜨려야 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도덕적 문제와 그 후유증의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전략 변화가 유일한 방법일테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모사드와 더불어 이스라엘 대테러 정보기관인 신베트의 카르미 길론 전 국장의 다음의 말은 이스라엘이 자국의 전략으로 겪고 있는 윤리적 문제를 아프게 꼬집는다.
“우린 수백만 명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고 그들의 고통을 연장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입대한 지 몇 달밖에 안된 병사에게 무엇이 적절한 행동인지 결정하라고 강요합니다. 기껏해야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일 년 된 젊은이가 어린 딸을 안고 지나가는 (팔레스타인) 아버지를 보고는 그를 세워 수색해야 할지 보내줘야 할지 몰라 고민합니다.”(다큐멘터리 '더게이트키퍼스' 중에서)
나블루스·쿠파카둠=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