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타짜: 원 아이드 잭' 박정민이 쓴 편지, 박정민이 받은 편지

[쿠키인터뷰] '타짜: 원 아이드 잭' 박정민이 쓴 편지, 박정민이 받은 편지

박정민이 쓴 편지, 박정민이 받은 편지

기사승인 2019-09-04 08:00:00


두 통의 편지가 시작이었다. 영화 ‘돌연변이’를 연출한 권오광 감독은 배우 박정민에게 이메일을 썼고, 박정민은 프랑스에 있던 류승범에게 손 편지를 보냈다. 캐스팅 제안보다는 애정을 고백하는 팬레터에 가까웠다. 마음이 잘 전해진 걸까. 두 배우와 감독은 결국 한 편의 영화에서 만나 호흡을 맞추게 됐다. 개봉을 앞둔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이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박정민은 영화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류승범에게 쓴 편지에 대한 설명은 짧았고, 권오광 감독에게 받은 편지 얘기는 길었다.

“제가 쓴 건 팬레터였어요. 감독님께서 류승범 형한테 시나리오를 보내신다는 얘길 들어서 그 김에 같이 보낸 거예요. 제가 승범이 형을 너무 좋아하니까요. 출연에 관한 얘기는 전혀 없었어요. 선배님을 보면서 꿈을 키워왔고 감사하다, 언젠가 뵀으면 좋겠다는 두 장 짜리 편지를 적었죠. 감독님 편지는 처음엔 캐스팅에 관한 오해를 풀어주는 메일인 줄 알았어요. 초반에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 같은 학교(한예종) 출신이라 그때부터 감독님의 단편과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절 아시는지는 몰랐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봤던 제 단편 영화부터 아무도 못 본 영화까지, 지금까지의 제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들을 적어주셨죠. 감독님께서 표현하고 싶은 도일출이란 인물과 제가 맞닿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설명해주셨고요. 전 정말 맞닿아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아무것도 아닌 학생시절부터 지켜봐준 감독님이 계시다는 것에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메일을 받고 마음이 많이 움직여서 어떤 영화가 됐든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받아든 ‘타짜: 원 아이드 잭’의 대본은 지금까지 박정민이 연기한 영화들과 달랐다. 현실을 사는 인간 박정민의 모습과 떨어뜨려야 하는 역할이었다. 실제 있을 것 같은 인물이 아닌 ‘타짜’ 시리즈에 어울리는, 관객들이 보고 싶은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숙제였다.


“영화 ‘파수꾼’에서 했던 연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타짜: 원 아이드 잭’은 오락 영화니까 재밌어야 하잖아요. 워낙 튀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니까 ‘타짜’에 어울리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처음부터 끝까지 도일출의 드라마로 진행되는 영화니까 전체적인 맥락을 꿰고 있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캐릭터나 연기처럼 디테일한 것들은 두 번째 문제고, 드라마 전체를 안전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했거든요. 어느 순간 제가 큰 실수를 범하면 드라마 전체가 삐끗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만나서 몇 시간 동안 매 장면을 꼼꼼하게 점검하기도 했어요. 제 나름대로 스토리보드를 만들어서 놓치는 게 없게끔 하려고도 했고요. 간혹 놓치는 게 있으면 감독님께 ‘죄송하지만 다시 찍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기도 했죠.”

연기 외적으로도 박정민이 준비해야 했던 것이 두 가지 더 있다. 체중 감량과 카드 연습이다. 도일출의 성장과 변화에 맞춰 점점 살을 빼야했다. 촬영을 마쳤을 때는 처음보다 20㎏이 빠져있었다. 마술사에게 셔플, 밑장빼기 등 카드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동영상을 주고 받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등 7개월 동안 카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카드 기술은 CG 없이 배우들이 모두 직접 소화했다.

‘타짜’ 시리즈는 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 1편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박정민 역시 열심히 준비한 것과 별개로 전작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촬영 전에는 부담이 컸지만 새로운 타짜 시리즈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에 위안을 얻었다.


“부담감 있었죠.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타짜’ 1, 2편 나온 모든 선배님들이 지금 한국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분들이 만드신 걸 이어받는 거니까 부담감이 심했어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생각해보니까, 저나 감독님, 제 또래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모두 ‘타짜’를 보면서 꿈을 키운 세대예요. 세대가 바뀐 만큼 우리 세대 나름의 타짜를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의 위안을 얻었어요. 5년, 10년이 지난 영화인 만큼 관객들과 시대의 성향도 변했고, 그에 맞춰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촬영했습니다. 촬영 전에 부담이 컸고, 촬영할 때는 재밌게 했어요. 막상 개봉할 때가 되니까 다시 부담이 되네요.”

‘타짜: 원 아이드 잭’은 박정민이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상업적인 오락 영화다. 처음 독립영화로 시작해 추석 관객을 노린 한국 대표 상업영화에 출연하기까지 박정민의 고민과 생각은 변해갔다. 지금은 ‘배우 박정민’보다 출연하는 ‘영화’ 자체에 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을 떠나서 시간이 갈수록 ‘한 편의 영화를 참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찍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솔직히 과거엔 제 욕심 채우기에 바빴어요. 난 언제 저 형들, 저 선배님처럼 되지, 저 선배님들은 아무 걱정 없겠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시절도 있었고요. 지금은 제가 촬영하고 참여하는 영화를 어떻게 하면 좋은 영화로 만들지 고민해요.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영화로 만드는데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죠. 지금의 고민이 과거의 고민보다 저를 훨씬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그때는 그냥 조급함이나 스트레스 정도였는데 지금은 고민의 질과 양이 더 커진 느낌이죠. 선배들은 걱정 없겠지라고 생각한 것도 오산이에요. 지금은 영화판에서 20~30년 동안 하고 계신 선배님들이 존경스러워요. 지금은 예전보다 저보다는 영화를 더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점점 그런 고민이 커지는 것 같아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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