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현지화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번역’이다. 유저들이 해외 게임을 접할 때 해당 게임과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매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 소설, 만화 등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따라서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깨는 '오역'은 치명적이다. 그런데 유독 게임에서 이러한 오역이 자주 나타난다.
게임은 영화, 소설 등과 다르게 텍스트의 구성 요소가 광범위하다. 게임 번역가는 인물의 대사 뿐만 아니라 스토리, 아이템 등에도 관여해야한다. 게임을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상황을 판단하기 힘든 경우도 많아 오역이 잦다.
위 사진은 어쌔신 크리드 속 한 장면이다. 적이 선제 공격을 감행해 대응 사격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지만 번역가는 원문 'Danm it, fire'를 '빌어먹을, 불이야'로 번역했다. 상황과 맥락 파악이 전혀 안돼 발생한 오역이다.
게임에선 존칭에 대한 오역도 상당히 많다. 서양 게임의 경우 한국과 다르게 존칭어에 대한 구분이 없다. 이 때문에 인물 관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번역된 경우,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말을 사용한다거나 상관이 부하에게 극존칭을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경 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는 실수라 아쉬움이 짙다.
비슷한 예로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군사 용어로 ‘Tango’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Target 또는 Terrorist, 즉 적을 칭할 때 사용하는 군사 용어인데 이를 알지 못하면 번역가는 탱고로 번역하는 수밖에 없다.
현지 정서를 고려하다 보니 생기는 의역도 상당하다. 이는 특히 해외에서 성인 등급을 받은 게임이 국내에 출시될 때 발생한다. 이 때문에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마초 성향의 남성 캐릭터가 점잖은 신사로 바뀌기도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러한 오역이나 의역은 이해할 수준이다. 문제는 종종 굉장히 낮은 수준의 번역, 혹은 의도와 정반대로 해석돼 게임성을 망칠 수준의 오역도 다분하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게임 중에 ‘다키스트 던전’이 있다. 게임 인트로 영상의 첫 문장인 ‘Ruin has come to our family’를 ‘유적이 우리 가족이 되었다’로 오역하는 것부터 시작해 게임 전반적으로 번역 수준이 굉장히 떨어졌다. ‘Ruin has come to our family’의 의미는 ‘파멸이 우리 가족을 찾아왔다’이다.
이 때문에 다키스트 던전은 한국 유저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며 현재는 새로운 번역이 적용돼 수정됐지만 지금까지도 조롱거리로 유저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도 오역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일례로 임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오역들이 나왔는데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벤치에 앉아 물주를 제거하십시오’를 ‘들키지 않고 벤치에 앉은 물주를 제거하십시오’로 번역해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혼란을 일으켰다. 이밖에도 게임 상황과 반대되는 번역, 아래쪽을 오른쪽으로 오역하는 등 인터넷 번역기보다도 못한 번역들이 다수 발견돼 혹평을 받았다.
게임 번역가들의 질적 수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만, 온전히 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게임 번역가의 환경은 상당히 열악하다. 일단 번역을 맡기면서 제공하는 정보가 굉장히 적다. 보통 개발사들이나 유통사들은 게임의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번역가에게 최소한의 정보만을 준다. 앞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오역들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번역가들에게 주어지는 시간 또한 굉장히 촉박하다. 특히 최근 게임 사업 트랜드가 게임 출시와 동시에 글로벌 진출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다.
어쌔신 크리드의 번역가가 한 커뮤니티를 통해 열악한 상황을 호소한 적도 있다. 그는 번역이 잘못 됐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수정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유통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가 싼 외주 업체에 의뢰를 맡기거나 퀄리티보다 속도에 더 비중을 둔다. 그로 인해 검수하는 기간도 굉장히 짧아져 제대로 확인이 안 된 상태로 게임이 출시된다.
번역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소비자의 문화 인식이 올라감에 따라 대중문화계에서 오역은 '공공의 적'이 됐다. 인터넷 번역기보다도 못한 번역, 비문, 맞춤법, 띄어쓰기 등등을 비롯해 내용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질 낮은 번역은 더 이상 게이머들이 수용하지 못한다.
번역의 퀄리티는 곧 게임의 퀄리티와 직결한다. 이 때문에 유통사와 개발사들은 자본과 시간, 노력 등을 번역에 투자해야한다. 번역이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욕설과 비속어까지 완벽한 현지화를 선보이며 국내에서 10여 만장의 판매를 기록한 ‘GTA 5’, 다양한 패러디와 정서에 맞는 의역으로 호평을 받은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국내 피시방 점유율 1위를 꾸준히 차지하고 있는 라이엇 게임즈가 ‘리그오브레전드’가 등은 개발사가 그만큼 현지화에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얻어낸 성과다.
이제는 게임 소비자들이 고품질 번역을 소리 내어 요구할 필요가 있다. 개발·유통사들이 번역 문제를 더 이상 간과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문창완 기자 lunacy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