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 주변에서는 여러 사람의 기념비를 발견할 수 있다. 메도비 모스트를 건너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 쪽으로 가다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조촐한 기념비는 율리우스 럽(Julius Rupp)을 기리는 것이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율리우스 프리드리히 레오폴드 럽(Julius Friedrich Leopold Rupp, 1809 – 1884년)는 프로이센의 개신교 신학자였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에 최초로 자유 개신교 교회를 세웠는데, 이 교회는 주정부나 교회의 통제를 거부하고 신도들에게 양심의 절대적 자유를 믿도록 했다.
그의 기념비에는 “그가 인정하는 진실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은 진실의 가장 위험한 적입니다(Кто не живёт согласно истине, которую он признаёт, тот самый опаснейший враг истины)”라는 럽의 말을 새겼다.
칸트의 묘소 앞에 서있는 동상은 1544년에 쾨니히스베르크 알베르투스 대학교(Albertus University Königsberg)를 설립한 프로이센의 알브레히트(Albrecht von Preußen) 공작이다. 튜턴기사단의 제37대 최고지도자였다. 1525년에는 개신교로 개종을 하고 프로이센공국의 초대 공작이 됐다. 그는 프로이센 공국을 종교국가가 아닌 세속국가로 운영했다.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의 서쪽 정면의 왼쪽 앞에는 로마노프왕조의 러시아제국의 황제 표트르 1세의 동상(Памятник Петру I)이 있다. 1697년 황후 예카테리나(Екатериной)와 함께 쾨니히스베르크의 총독 리길렝하(Негеляйна)의 집에서 수학자이자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와 만나는 등 공식일정을 소화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밖에도 칸트 섬에는 다양한 조각 작품을 전시하는 조각공원이 있다. 꿀 다리를 건너 칸트 섬으로 들어서 왼쪽 프레골랴 강변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 조각 작품을 만나게 된다. 조각가 체르니츠키(Черницкого)의 ‘천지창조(Мир. Созидание, 미르 소지다니에)’다. 벌거벗은 남자가 머리에 얹고 있는 무거운 돌덩이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의미한다. 돌덩이에는 예술가의 모습을 새긴 커다란 접시들이 이어져있다.
러시아 화가 일리아 레핀(Илья́ Ефи́мович Ре́пин), 러시아 시인 미하일 로모노소프(Михаи́л Васи́льевич Ломоно́сов),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와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 이탈리아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러시아 화가 미하일 브루벨(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Вру́бель), 러시아 화가 발렌틴 세로프(Валенти́н Алекса́ндрович Серо́в) 등이다.
나머지 조각 작품들은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을 지나 서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왼쪽으로 펼쳐지는 풀밭에 흩어져있다. 1944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것을 주민들이 정비했다. 1960년대 들어 관목 등의 나무를 적당히 심다가 일본, 아프리카, 북남미, 아프가니스탄, 유럽, 몽골 등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묘목들을 심기 시작하면서 수목원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현재 이곳에는 1000여종의 식물이 있다.
1984년 칸트 섬에 조각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12헥타르의 면적에 ‘인간과 세상(Человек и мир)’을 주제로 한 작곡가, 작가, 시인 등 문화 인물에 대한 기념물 등 30여개의 조각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부 작품이 파손 혹은 도난당해 망실되고 23개가 남아있다. 칼라닌그라드 관광명소 가운데 ‘조각공원(Парк скульптуры)’을 설명하는 사이트에서 작품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조각가 로마노바(Романова)의 ‘전쟁 없는 세상(Мир без вой-ны, 1981)’이 있다. 조각가는 ‘지구에 대한 더 나은 미래의 꿈, 진실이 완성된다는 믿음’을 구현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작품은 벨리쇼프(Белашова)의 ‘표범(Пантера)’이다. 그밖에도 쇼팽, 헨델, 차이코프스키, 미츠코비치, 고르키, 가가린 등의 인물상을 비롯해 노래하는 아이들, 북쪽 멜로디, 빛을 향해, 평화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칸트 섬을 떠나 찾아간 곳은 칸트의 동상이 서 있는 곳이다. 지금은 임마누엘 칸트 주립대학의 본관 앞에 서있다. 아래쪽 호수의 서쪽에 있는 이 대학은 2005년 이전까지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이라고 했다. 19세기에 독일 조각가 크리스티안 다니엘 로크(Christian Daniel Rauch)가 제작한 칸트 기념비가서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 중에 사라졌던 것을 1990년대 초반에 독일단체에서 칸트 동상의 복제품을 기증해 다시 세운 것이다.
하지만 칼리닌그라드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죽은 세계적인 철학자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2018년 11월에는 누군가 칸트의 동상에 핑크색 페인트를 뿌리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주변에 뿌려진 전단지에는 “배신자에게 망신을! 칸트에게 망신을! 러시아에 영광을!”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무래도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의 소행이 아닐까 싶은데, 오히려 그자에게 망신을 줘야 할 것 같다.
칸트 동상에 이르는 길에는 벙커박물관(Музей Бункер)이 있다. 칼리닌그라드 방어작전을 지휘하던 오토 폰 리아쉬(Otto von Lyash) 장군의 지하 벙커가 있던 장소다. 1945년 2월, 깊이 7m의 땅 속에 길이 45m 폭 15m의 벙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벙커 안의 방들에는 당시 사용하던 기물들이 비치돼있어 긴박했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나와 쇼핑몰 테알크 예브로파(ТРЦ Европа)로 갔다. 발트연안국가들 가운데 러시아 물가가 가장 싸기 때문에 선물 등을 골라보라는 김영만 가이드의 엽엽한 마음이 숨어있는 자유시간 이었다. 일단 쇼핑몰 건너편에 있는 러시아정교회를 구경하기로 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칼리닌그라드 시청 앞에 있는 승리광장(Площадь Победы) 뒤에 있다.
1912년 성 밖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지역에 있던 쾨니히스베르크 성벽의 일부인 스타인담(Steindamm) 문과 트라그하임(Tragheim) 문을 해체했다. 그리고 1339년부터 1579년에 이르는 동안 한자동맹의 일원이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한자광장이라고 불렀다. 1934년에는 나치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을 따서 아돌프 히틀러 광장으로 개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러시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승리광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1953년에는 스탈린 기념비가 세워졌다. 1958년 11월, 조각가 토푸리제(Топуридзе)가 제작한 레닌 기념비로 교체하고, 스탈린 기념비는 극장 거리 광장으로 옮겼다. 2005년에는 도시 창립 7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광장을 완전히 개조했다. 광장 중앙에 새로운 분수대를 지었고, 같은 해에 러시아 정교회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Кафедральный собор Христа Спасителя)이 봉헌됐다. 대성당 앞에 있던 레닌동상도 철거해 다른 곳으로 옮겼다.
1985년까지 칼리닌그라드에 러시아 정교회 예배당이 없어 독일 교회의 예배당에서 예배를 봤다. 이후 1996년에야 승리광장에 작은 목조성당을 지었고, 그 옆에 건축가 오렉 코필레프(Олег Копылов)의 설계로 대성당을 건립하기로 했다. 대성당은 입구에 아치형 돌출부가 있는 팔각형 건물로, 5개의 돔에 제단 후진에 해당하는 동쪽에 6번째 돔을 더해 성서에 나오는 천지창조에 드는 기간 6일을 상징한다.
돔은 고대 비잔틴사원의 양식으로 만들었다. 대성당의 총 높이는 69m이고 대지면적은 1000m² 이상이다. 13개의 종을 달았는데, 가장 큰 종은 14톤에 이른다. 대성당은 2006년 완공돼 총대주교 알렉심 2세(Алексием II)에 의해 봉헌됐다. 2010년에는 대성당 오른쪽에 작은 규모의 교회를 지어 베드로 성인과 페브로니아 성인에게 헌정됐다.
승리광장과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구경하고 쇼핑몰로 돌아왔다. 쇼핑몰 귀퉁이에 있는 숨어있는 슈퍼마켓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철갑상어 표시가 있는 보드카를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사지 않았는데, 며칠 뒤에 리가에 가서 보드카를 사면서 후회했다.
쇼핑몰 옆에 있는 작은 공원에는 여성의 동상이 서있다. 로디나 마트(Родина-мать, 어머니 祖國)라고 하는 기념물이다. 중세시대부터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국가를 여성, 특히 모성으로 의인화해왔다. 그렇게 의인화한 여성의 이름은 마투쉬카 러시아(Матушка Россия, 어머니 러시아) 혹은 로디나 마트라고 불렀다.
10월 혁명과 볼셰비키혁명에서도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위대한 애국 전쟁’이라 일컫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도 국민들의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기념물을 베를린과 마드리드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특히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합에 소속됐던 여러 나라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쇼핑몰에서 자유시간을 넉넉하게 즐기고 7시에 모여 숙소로 떠났다. 이날 숙소는 칼리닌그라드의 동쪽 끝 교회지역에 있는 ‘깨끗한 연못’이라는 의미의 씨스티 푸르드(Чистый пруд) 가에 있는 발티카(Балтика) 호텔이었다.
전날은 프런트가 지하에 있더니 이곳은 2층에 있어서 무거운 가방을 2층을 끌어올려야 했다. 그리고 여권을 프런트에 맡겨야 했는데, 러시아를 여행하는 외국인은 머무는 곳을 당국에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을 통제하는 공산주의 국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일면이었다.
방은 호수 쪽과 도로 쪽으로 있는데 운 좋게 호수 쪽에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6층에서 내려다보는 호수에 내리는 어둠이 너무 좋아서 짐 풀기도 잊은 채 곧 바로 호수가로 내려갔다. 생각 같아서는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싶었는데 산책로가 없어 아쉬웠다.
호숫가에는 카페가 있고 사람들이 들어 있는 품이 무슨 행사가 있는 듯했다. 호숫가에는 새끼를 거느린 백조가 저녁을 맞을 준비를 하는 듯했다. 새끼들은 덩치가 어미와 비슷했지만 잿빛 깃털이 솜털처럼 보였다. 어린 백조가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은 것이 이해된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