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윤희에게’ 이렇게 무해한 감성 멜로라니

[쿡리뷰] ‘윤희에게’ 이렇게 무해한 감성 멜로라니

‘윤희에게’ 이렇게 무해한 감성 멜로라니

기사승인 2019-11-08 05:00:00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흰 눈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 ‘러브레터’(감독 이와이 슌지)의 순수한 느낌, 혹은 두 주인공이 입고 있는 짙은 색 옷과의 이미지적 대비도 생각해봤다. 현실적인 한국의 칙칙한 분위기와 다른 비현실적인 공간을 강조하는 느낌도 줬다. 영화는 치우고 치워도 결국 다시 쌓이고야 마는 그리움이란 힌트를 은근슬쩍 흘렸다. 결국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의 깨끗하고 무해한 느낌과 비슷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누구도 피해받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따뜻했다.

‘윤희에게’는 편지에서 시작해 편지로 끝나는 영화다. 우연히 엄마 윤희(김희애)에게 온 일본어로 된 편지를 읽은 새봄(김소혜)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일본 여행을 제안한다. 새봄은 남자친구 경수(성유빈)의 도움을 받아가며, 엄마 윤희와 오타루에 살고있는 엄마의 옛 친구 쥰(나카무라 유코)의 자연스러운 재회를 유도한다.

20년 전의 추억을 간직한 두 주인공과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오타루, 손으로 쓴 편지 등 24년 전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많은 영화다. 감성 멜로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러브레터’가 만들어놓은 틀을 기반으로 ‘윤희에게’는 전혀 다른 감성과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 재미에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감각을 살려낸다. ‘러브레터’가 영화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이고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를 얼마나 극적으로 풀어놓는지 보여줬다면, ‘윤희에게’는 인물들의 관계와 사랑만큼 중요한 현실과 일상의 공기에 집중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배우 김희애의 존재감이 극과 현실을 연결하고 관객들을 설득시킨다.

윤희보다는 주변 인물인 새봄과 쥰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두 사람의 일상에 윤희가 얼마나 많이 스며들어 있는지 자연스럽게 끄집어내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증을 배가시킨다. 거기에 새봄과 경수를 중심으로 웃음이 터지는 일상의 순간들을 집어넣어 주요 이야기와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악인도 없고 누구의 잘못을 탓하지도 않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응원하게 하는 따뜻함을 러닝타임 내내 유지하는 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윤희와 새봄, 쥰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누군가의 도움이나 응원 없이도 앞으로 잘 살아나갈 게 분명한 사람들인데도 그렇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고 이해할 수 있게 열어주는 임대형 연출이 눈에 띈다. 특히 영화의 톤과 자신의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김희애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어색함 없이 호흡하는 신인 배우 김소혜도 주목할 만하다. 14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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