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이혜리 “버텨낸 이에게 해피엔딩을!”

[쿠키인터뷰] 이혜리 “버텨낸 이에게 해피엔딩을!”

기사승인 2019-11-27 17:11:09

tvN ‘청일전자 미쓰리’ 마지막회 촬영 현장. 하얀 반사판과 눈부신 조명 앞에 선 배우 이혜리가 들뜬 얼굴로 카메라를 불러세우더니 입모양으로 외쳤다. “선심(극 중 이혜리 캐릭터)이한테! 반사판이! 생겼어요!” 드라마가 방영되던 두 달 내내 회색 점퍼와 뿔테 안경 차림으로 카메라를 마주했던 그에게, 반사판의 등장은 나름의 ‘사건’이었다.

예쁨 내려놓은 전직 걸그룹 “오히려 더 편하던데요?”

“안경을 벗은 10초가 저한텐 황금 같은 시간이었어요. (스태프들이) 반사판 4개를 거의 집처럼 대주셨죠.” 최근 서울 도산대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혜리가 호탕하게 웃었다. 이혜리는 지난 14일 종영한 ‘청일전자 미쓰리’에서 중소기업 ‘청일전자’의 직원 이선심을 연기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어 늘 ‘쭈구리’ 신세인 선심을 표현하기 위해 이혜리는 화장도 반사판도 마다했다. “주변 반응이요? ‘안경을 뭘 그딴 걸 썼어’라던데요? 으하하. 그래도 전 좋았어요. 선심이한테 딱 맞는 것 같았거든요.”

16세에 데뷔해 한 번도 회사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이혜리는 사회 초년생인 친구들에게서 선심을 연기할 실마리를 얻었다. “‘연차’라는 게 있대요. 그런데 그것도, 휴일과 붙여서 쓰면 눈치가 보인다면서요?” 데뷔 초 자신의 모습도 떠올렸다. ‘너 이러면 안 돼’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그저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던 때. 이혜리에게 선심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자신을 지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촬영을 시작할 즈음엔 ‘선심이가 답답하다’는 감상 대신 ‘억울하다’는 선심의 마음이 이혜리에게 스몄다.

“막내 경리 시절의 선심이는 초년생이고 약자잖아요. 특별한 계기(청일전자 전 대표의 도주)로 대표가 되지만, 강압적이거나 권위적으로 변하는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당한 부당함을 남에게 돌려주지 않으려는, 비속어이긴 하지만… ‘내리갈굼’을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선심이는. 원래 선심이가 갖고 있던 배려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죠.”

이혜리는 ‘이혜리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원했다. 가장 먼저 내려놓은 건 ‘꾸밈’이었다. 하루는 안경을 쓴 채로 식당에 갔는데,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더란다. 그에겐 ‘목표 달성’이었던 셈이다. 이혜리는 평소에도 치장을 즐기지 않는다고 했다. 개인 유튜브 방송에서 민낯을 공개했을 정도다. “반응을 보니 ‘대단하다’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저는 (화장 전후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올린 건데….” 그래도 그는 다른 사람의 말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외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자존감이 오르더라며 웃었다.

“먼 미래 걱정 말고, 과거에 연연 않고…”

하루아침에 대표가 된 선심처럼, 이혜리도 하루아침에 ‘대세’로 떠올랐다. 2014년 MBC ‘진짜 사나이’에서 보여준 ‘먹방’과 애교로 ‘벼락스타’가 됐다. 이듬해엔 주인공으로 출연한 tvN ‘응답하라 1988’가 크게 흥행하면서 ‘100억 소녀’로 불렸다. 이혜리는 “행운이 많이 따른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내년의 계획을 세우는 데 익숙했던 이 소녀는 여러 우연을 겪으며 ‘현재에 충실하자’는 배움을 얻었다.

“‘진짜 사나이’에 나가기 전에도 저는 제 자리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어요. 그래서 자신감은 있었죠. 지금은 빛을 못 보고 있을뿐, 나는 꼭 잘 될 거라는…. 돌아보면 제가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게 될 줄 전혀 몰랐고, 그 프로그램으로 사랑받을 줄은 더더욱 몰랐거든요. 먼 미래를 생각하고 과거에 연연할 게 아니라, 지금을 열심히 살면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선심이를 연기한 것도 스물 여섯 살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고 봐요.”

이혜리는 ‘혜리스럽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에게 ‘혜리스럽다’가 무슨 의미냐고 물으니 “(뭐든) 잘 나눈다는 뜻”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혜리는 많은 걸 나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주변에 나누겠다는 추상적인 의미를 넘어서, 그는 물리적인 나눔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7월엔 유니세프에 1억원을 기부해 ‘유니세프 아너스 클럽’의 최연소 회원(만 25세)으로 등록됐다. 유쾌한 에너지를 뿌리는 것도 그의 주특기 중 하나다. “저 혼자 갖고 있기엔 이 에너지가 너무 커요! 왜 그러지? 밥을 잘 먹어서 그런가? 하하.” 

통통 튀는 성격만큼이나 그의 앞날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해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혜리는 “공란으로 두고 싶다”고 답했다. 무슨 일이든 아이디어가 번뜩이는대로 도전하겠다는 의미였다. 이혜리는 자신과 선심은 서로 다른 성격이라고 했지만, 자신의 시간을 기다리며 버텨냈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자신에게 온 기회를 주저하지 않고 잡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혜리는 ‘청일전자 미쓰리’가 “사람 사는 이야기”이길 바랐다. 기적 같은 결말도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길 소망했다.

“저는 선심이가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서 결국 해피엔딩을 맞은 사회 초년생’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인생에서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너무 많잖아요. 그래도 각자의 목표를 바라보고 견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길 바라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