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워너원 출신 가수 하성운은 6일 자신의 공식 팬카페에 ‘혹시나’로 시작되는 글을 올렸다. “걱정하시는 분들 있을 것 같아서 (팬카페에) 왔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뭐든.” Mnet ‘프로듀스101’(이하 프듀) 시리즈를 총괄한 김용범 CP가 시즌2 당시 최종 데뷔조에 포함되지 못한 A 연습생의 상위 11위에 포함되도록 조작했다는 검찰 공소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다음날 적은 글이다. 온라인에서는 하성운의 글이 ‘프듀’ 조작 논란에 관한 발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비슷한 시각 포털 사이트에는 ‘김종현’이 실시간 인기 검색어로 등장했다. 김종현은 그룹 뉴이스트 멤버로 활동 중인 JR의 본명이다. 그는 2년 전 연습생을 자처해 ‘프듀2’에 도전했다. 중간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누렸으나 최종회에서 14위에 그쳐 데뷔조에 들지 못했다. 그런데 김 CP 등 제작진의 투표 조작으로 상위 11명 포함됐던 B 연습생의 순위가 11위 바깥으로 밀려났다는 공소 내용이 5일 나오면서, 피해를 본 연습생으로 김종현이 거론됐다. ‘프듀2’ 제작진이 과거 SNS에 실수로 올린 데뷔멤버 포스터에 김종현, 강동호(뉴이스트 백호), 김사무엘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이런 추측의 근거가 됐다.
Mnet 측은 안준영 PD 등이 시즌3, 4 투표 조작을 시인한 뒤인 지난달 7일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티스트에 대한 추측성 보도는 삼가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투표 조작으로 데뷔하거나 탈락한 멤버가 누구인지 추측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였다. 하지만 김 CP의 공소장을 보면 제작진은 시즌 3, 4을 만들면서 최종 데뷔 멤버를 미리 구성하고 순위까지 정해둔 뒤, 이들의 득표수를 조작했다. 시즌 3, 4로 결성된 그룹 아이즈원과 엑스원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로, 엑스원 팬덤은 CJ ENM에게 ‘팀을 해체하고 멤버들과의 계약을 해지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조작 그룹’이라는 낙인이 엑스원 멤버들의 향후 활동까지 방해할 것을 우려한 처사다.
유료 투표에 참여했던 시청자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가수 및 연습생들에게도 피해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탈락한 연습생은 물론, 아이즈원이나 엑스원처럼 이미 데뷔한 가수들에게도 ‘조작 그룹’이라는 오명이 뒤따랐다. Mnet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보상 범위와 방법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Mnet은 6일 “현재 공소장을 확인 중이다. 보상절차 등에 대한 논의 후 정리가 되는대로 공식입장을 낼 것”이라고 재차 밝힌 상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번 사건은 소속사와 방송사 제작진들이 결탁해 만들어낸 비리”라고 짚었다. “탈락한 출연자들은 (데뷔) 기회를 박탈당한 입장이기 때문에 진실을 알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 있다. 누가 어떤 혜택을 봤느냐에 대한 궁금증이 나오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다만 이로 인해 상황을 모르는 아티스트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출연자들, 탈락한 출연자들, 또 유료 투표에 참여한 국민 프로듀서들 모두 피해자”라면서 “합당한 보상을 위해서는 우선 누가 피해자인지를 정확히 상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평론가는 또한 “금전적, 물질적인 보상으로는 해결이 안 될 것이다. 그보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앞으로의 개선 방안 등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편 김 CP와 안 PD 등 제작진과 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기획사 임직원 5명에 대한 재판은 오는 20일 시작된다. 피고인 8명의 변호인들은 이날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 사실에 대한 의견을 전하고, 증거 등에 대해서도 논의할 전망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