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SNS 마케팅? 정보 비대칭부터 해결돼야

사재기? SNS 마케팅? 정보 비대칭부터 해결돼야

기사승인 2019-12-09 19:56:20

음악 단체 관계자들과 음악 플랫폼 사업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원 사재기 근절 방안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SNS 페이지를 통해 인기를 얻은 일명 ‘페북픽(Pick)’ 노래들이 최근 사재기 의혹의 중심에 섰지만, SNS 마케팅으로 유입된 음원 소비자와 불법 사재기 브로커들을 구분해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9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와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김영준)이 주관한 ‘온라인 음원차트와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공정성 세미나’가 열렸다. 지니뮤직 홍세희 본부장이 ‘온라인 음원차트의 공정성 및 대중음악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발표하고, 여러 음악단체 관계자들이 이와 관련한 토론을 이어갔다.

이날 가장 뜨거운 화두는 바이럴 마케팅과 차트 순위 상승과의 상관관계였다. SNS 페이지를 통해 노출된 발라드곡들이 최근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에서 인기 아이돌을 꺾고 상위권에 올랐는데, 대중은 이 노래들이 ‘사재기’를 통해 차트에 올랐다고 의심하는 반면, 기획사 측은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지난해 불거진 그룹 장덕철, 가수 닐로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홍 본부장은 “플랫폼 입장에선 (음원 차트와) 바이럴 마케팅과의 연관성을 밝히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플랫폼 사업자들도 내부적인 모니터링과 로그 데이터 검증을 진행하고 있지만, 바이럴 마케팅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는 설명이다. 홍 본부장은 “바이럴 마케팅을 한 음원을 내부에서 살펴본 결과, 한 집단이나 업자가 구매·재생했다고 판별하긴 어렵다”고 했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부회장은 SNS 마케팅 업체들에게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 주요 업체들과 이들이 홍보하는 가수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 업체에 마케팅을 맡겼더니 (음원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렇다면 거기엔 (음원이 인기를 얻는) 이유가 있을 텐데, 대중이나 관계자들은 무턱대고 (사재기를) 의심한다. 가수들이 밝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마케팅 업체들이 자료를 공개·공유함으로써 진실 규명에 나서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상규 드림어스컴퍼니 미디어콘텐츠 부문장도 “음원 사이트가 아니라 페이스북과 음원 바이럴 마케팅 업체들이 데이터를 공개해 정당한 마케팅이라는 것을 입증받아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윤 부회장은 이와 별개로 SNS 마케팅에 대한 규제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협찬이나 광고비 수급 여부를 반드시 적시해야 하는 네이버 블로그와 달리, SNS 페이지는 소비자 모르게 광고하는 ‘스텔스 마케팅’이 가능하다. 윤 부회장은 “(SNS상의) 게시물 1개에 적게는 몇백만원, 많게는 8000만원까지 쓴다”면서 “그런데도 페이스북 마케팅에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 돈만 있으면 더 많은 사람에게 홍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국장은 SNS 마케팅과 음원 사재기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봤다. 법이 규정한 음원 사재기는 음원을 포함한 음반을 부정하게 구입하는 행위라면서 SNS 마케팅을 비롯해 평점, 댓글, ‘좋아요’를 관리하는 바이럴 마케팅도 불법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한 ‘플랫폼 사업자가 비정상적인 패턴을 보이는 이용자에게 어떤 로직으로 대응하는지 공개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대응로직은) 영업비밀일 뿐 아니라 사재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매뉴얼을 제공할 우려가 있다”고 맞섰다.

윤호정 세종대학교 교수는 이같은 문제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봤다. 정보를 조작해 혜택을 누리는 시장 참여자가 존재하는 반면, 정보에서 소외된 이들이 이로 인한 피해를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트립어드바이스의 사례를 근거로 들면서 플랫폼 사업자 혹은 정보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감시 기능을 살릴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실시간 차트’가 음원 사재기를 유인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관계자들 간 온도 차가 나타났다. 지니뮤직 홍 본부장은 실시간 차트의 순기능을 강조하면서 “사재기의 표적이 된다는 이유로 실시간 차트를 없애는 게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드림어스컴퍼니의 신 부문장은 보다 진보적인 견해였다. “차트의 순기능까지 비판할 필요는 없지만, 음악 이용에 있어 차트를 너무 중심에 둔 것은 아닐까 싶다”며 “플랫폼 차원에서 고객에게 (실시간 차트 외에) 다양한 청취 방식을 내놓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임희윤 동아일보 기자는 “스포티파이 같은 해외의 글로벌 스트리밍 사이트들도 차트를 운영하지만, 첫 페이지 상단에 차트를 계속 노출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실시간 차트보단 최소 일간차트의 형태로 운영한다”며 “네이버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가 쇼핑사이트의 마케팅으로 인해 신뢰를 잃으니 맞춤차트 등 대안을 생각하고 있다. 음원 차트도 개인 맞춤형 등 여러 방향으로 (개선 방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