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이 국적·인종·나이 등을 초월한 ‘초문화적 팬덤’을 모은 데엔 이들과 ‘아미’(방탄소년단) 사이의 정서적 친밀감과 동일시가 중요한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는 11일 서울 연세로 연세대학교 백양누리관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너머의 K팝’ 주제의 세미나에서 방탄소년단의 캐나다 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진 교수 연구팀의 조사 결과, 응답자들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뽑은 여섯 가지 요소는 ‘즐길 수 있는 음악’ ‘멤버들의 개성과 태도’ ‘메시지’ ‘퍼포먼스’ ‘역경 극복의 메시지’ ‘팬들과의 연대’ 등이다.
진 교수는 특히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라는 방탄소년단의 메시지가 중요한 인기 요인이라고 봤다. “팬들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선회하게 하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메시지가 팬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이 인터뷰한 53세 여성 팬은 “음악에 있는 단어, 메시지 때문에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 (방탄소년단이) 나의 악몽 같은 세월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줬다”면서 “그리고 그 노래들이 나 자신을 사랑하게끔 도와줬다. 그게 방탄소년단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팬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가장 강력하다. 노래 가사를 100% 이해하진 못하지만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 노랫말을 구체적으로 번역하지 않아도 방탄소년단 음악에 담긴 메시지가 강하고 깊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진 교수는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불균형, 불균등, 경제적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노래한다”면서 “팬들은 (방탄소년단과) 경험을 공유하며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고 동일시를 이루게 된다”고 봤다.
또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이런 음악성이 확산 및 상호 교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 조사 결과, 응답자들 가운데 많은 인원이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는데, 거론된 소셜미디어들은 아티스트와 팬의 상호작용이 특히 활발하게 벌어지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또 팬덤의 적극적인 소비 방식에도 주목했다.
정아름 중국 쓰촨대 교수는 팬들이 응원하는 가수를 위해 펼치는 스트리밍 공세와 투표, 댓글 관리 등을 ‘팬덤 노동’ ‘애착 노동’이라고 명명했다. 치열하고 위태로운 산업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살아남아 다음 음반을 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이런 ‘노동’을 자발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오늘날 팬덤은 1990년대의 1세대 팬덤에 비해 중요한 소비자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이 산업과 기획사의 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부 팬들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거나 극단적인 사이버불링을 하는 경향도 보인다”라면서 “팬들의 활동들이 건전한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홍콩침례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루티엔씨는 ‘방탄 투어’를 소개하면서 해외 팬들의 한국 관광문화가 새로운 ‘팬 지형’(fanscapes)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루티엔씨는 “(K팝은) 창단순한 쇼비즈니스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라며 “세계와 삶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