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 켜진 연동형 비례대표제, 통과돼도 ‘문제’

빨간불 켜진 연동형 비례대표제, 통과돼도 ‘문제’

막판까지 진통 거듭하는 선거제 개혁… ‘개악’ 우려 속 ‘깜깜이’ 선거 불가피

기사승인 2019-12-17 06:00:00

‘국민 닮은 국회’를 만들겠다며 진보·군소정당들을 중심으로 추진돼온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좌초위기에 놓였다. 그간 보수정당의 강한 반대 속에서도 공고한 연대로 난관을 헤쳐 나가던 이들은 협상시한을 앞두고 좌중지란에 빠졌다. 이에 내년 총선이 더욱 혼탁해질 전망이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잠정처리시한인 17일을 하루 앞둔 16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상정,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정면 돌파하며 처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국회 본회의도 결과적으로 무산됐다.

문 의장이 오전과 오후 2번의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을 추진하며 국회정상화를 꾀했지만,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회동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문 의장은 본회의 개의 무산을 선언하며 “한국 정치에 데모크라시(민주주의)는 온데간데없고, 비토크라시(vetocracy, 극단적 파당정치)만 난무하고 있다”고 한국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또한 “국회 정상화에는 관심 갖지 않고 보다시피 국회를 난폭하게 유린할 수 있는 집회를 하는 한국당에게 매우 유감”이라며 한국당을 향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한국당이 마음을 바꿔 민생 입법과 예산부수법안, 개혁입법 과제와 관련해 국회를 정상 운영한다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협상의지도 내비쳤다.

문제는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 내부갈등을 봉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4+1 협의체’에서 강한 목소리를 내왔던 정의당의 불만이 커지며 민주당과 날선 공방을 거듭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 14일에는 “민주당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단가를 후려치듯 밀어붙이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표출한데 이어 16일 오전 상무위원회에도 “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의 협상 카드를 밀고 ‘4+1’ 협상이 뜻대로 안 되면 원안을 상정해 부결돼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은 16일 심 대표의 발언에 이어 “여야 4당이 합의한 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은 여러 이유를 들어 지역구 250석·비례대표 50석까지 뒤떨어지더니 급기야 25석 캡(cap)이라는 희한한 방식이 나왔다”며 “진보정치의 새로운 정치인을 육성하려는 석패율마저 폐지를 운운하고 있다”고 역시 민주당을 질타했다.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거대 정당의 힘을 이용해 군소정당의 양보만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오히려 16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하려는 것이지 ‘개악’하려는 게 아니다. 선거법 개정은 상호 간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일방적 요구에 아직 합의를 못 보고 있다”고 정의당을 압박했다.

나아가 이인영 원내대표는 “선거개혁과 검찰개혁에 대한 초심 보다는 서로의 주장이 더 앞서는 경우가 많아져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국민의 명령을 절박하게 되새기며 조금 늦더라도 바른 길을 가겠다”며 석패율 도입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4+1’ 협상 이전의 원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공언하기도 했다.

◇ 선거법 개정, ‘4+1’ 내부합의 거쳐도 ‘첩첩산중’

문제는 더 있다. ‘4+1’ 합의를 극적으로 이룬다 해도 한국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저지행위)’라는 장벽이 도사리고 있다. 더구나 한국당이 제안한 ‘선거법 개정안 원안, 무기명 투표’라는 저지선을 돌파하기도 녹록치 않다. 여기에 일련의 장애물을 모두 넘어도 늦장처리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풀어야할 숙제다.

현재 한국당은 지난달 29일 본회의에 상정된 199개 법안 중 지난 10일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정부예산안과 일부 법안을 제외한 180여개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신청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지난 13일 본회의 개최 직전에는 임시국회 회기를 결정하기 위해 상정된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며 국회 본회의 개최를 무산시킨 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회기결정의 건’에 대한 필리버스터 신청의 정당성을 거듭 주장한데 이어, 절충안이라며 16일 최고위원회의 후 ‘공직선거법 개정안 원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경우 필리버스터를 철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여기에 ‘무기명 투표’라는 카드까지 더했다.

민주당 등의 원안상정 요구를 받아들여 ‘발목 잡기’라는 여론의 화살을 피하는 동시에, 지역구 의원 225명에 연동률 50%를 적용한 비례대표 75명을 뽑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핵심인 원안을 표결할 경우 지역구 축소나 변경이 큰 만큼 영향을 받는 민주당 등 ‘4+1’ 연대 내 지역구 의원들의 반대표가 무더기로 발생해 결과적으로 안건을 부결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에 ‘4+1 협의체’ 내에서도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16일 “모든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차라리 패스트트랙 원안을 표결하자”는 입장을 밝혔고, 선거법 개정을 강하게 주장해온 정의당의 윤소하 원내대표는 “동의하진 않았지만 계속 연동형 캡을 고집한다면 21대 국회에 한정해 도입하자”는 절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석패율 도입을 주장한다면 더 이상의 합의 없이 원안을 상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어제(15일)까지 확인했던 이야기와 또 달라 직접 (뜻을) 확인해야 하지 않겠냐”고 즉답을 피한 채 지금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4+1 협의체’ 또한 이날 협상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원안표결이든 한국당의 전향적 결단에 의한 합의가 이뤄지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의 개정이 연말까지는 늦어도 이뤄져야하는 상황이다. 

실제 선관위에 따르면 내년 4월 15일 총선을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치르기 위해서는 선거구가 선거일 49일 전으로 법에서 정한 국외거주자명부 작성 전까지 확정돼야한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선거구 획정에 2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외거주자 명부작성일인 내년 2월 26일로부터 2개월 전인 12월 26일까지는 법이 개정돼야 적용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 관계자는 “최대한 늦춰져도 선거구 획정안이 2월 26일까지 돼야한다고 치면 12월 말”이라고 했다. 다만 “선거관리상황 측면에서 보면 지역의견청취나 정당의견수렴 등의 일정을 감안해 통상 2개월 정도라고 말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국회에서 시도별 의원정수만이라도 확정되면 획정안 마련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문제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다만 시일 단축에 따른 충분한 의견수렴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나, 선거운동기간의 축소 등으로 인해 벌어지게 되는 현역 의원과 정치신인 사이의 불평등에 일명 ‘깜깜이 선거’로 명명되며 후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선거를 치르는 문제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선거제도의 문제점은 되풀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는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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