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죽음, 한국마사회는 책임 없답디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이르는 사자성어, ‘단장지애’(斷腸之哀). 흔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빗대 말한다. 지난 1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한 아비의 단장지애가 절절히 느껴졌다. 한국 경마 내 다단계식 채용구조 부조리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 A씨(40). 그를 대신해 유가족은 구조 개선을 요구하기에 나섰지만 뚜렷한 책임기관이 없어 개선은 답보 상태에 빠졌다.
먼저 경마 채용 시스템은 독특하다. 기수, 말 관리사 등은 놀랍게도 한국마사회 소속 직원이 아니다. 채용구조를 살펴보면 맨 위에는 ‘마주’가 존재한다. 마주와 마필위탁관리계약을 맺은 조교사(개인사업자 신분)는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채용한다. 기수와 말 관리사는 ‘을’ 중의 ‘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마사회(마사회)는 왜 기수와 조교사를 직접 채용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꽤 거창하다. ‘선진 경마’. 지난 1992년, 경마 승부 조작 논란이 불거졌는데, 당시 기수와 조교사 150여명 중 대부분이 부정 경마꾼에게 매수된 관계자였다. 이듬해 마사회는 개인마주제로 전환, 병폐를 없애고 경쟁을 극대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공정 경기를 위한 조치였으나 결과는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힘은 마주에게 치중됐고, 또 부정경마 의혹이 불거졌다. A씨는 조교사들이 인기마들의 실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일부러 살살타게 해서 등급을 낮추게 한 뒤 승부를 걸어 고액배당을 얻기 위해 기수를 동원, 이를 거부할 경우 말을 탈 기회를 박탈한다는 내용의 쪽지를 남겼다. 쪽지에는 마사회에 잘 못 보이거나 높으신 양반들과 친분이 없으면 마방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부정경마를 토로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기수와 마필관리사는 지난 2005년 개장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총 7명에 달한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원래 직접 고용하던 조교사를 개인 사업자로 두고, 하위 성과자를 퇴출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선진 경마'가 서울, 제주 등에 비해 잘 시행되는 곳으로 평가받는다.
마사회는 정말 책임이 없을까. 마사회가 기수, 조교사에게 뻗치는 손길은 이같은 주장을 뒤집는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4일 오후 7시 전국(서울·부산·제주) 전체기수 125명 중 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경마기수 노동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수들은 ▲기수면허 유지권 ▲조교사면허 취득권 ▲마방대부 심사권 등으로 마사회 입김을 실감한다고 답했다. 또 이들은 “마사회 직원의 개인판단(재정지원등) 에 의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다. 마사회법 자체가 당사자들의 입맛에 따라 수시로 변경 가능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與, 열악한 노동환경 속 마필관리사 잇단 사망 마사회 책임 물을 것’. 이는 지난 2017년 8월2일 KBS가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제목만 보면 어느 시점에 보도된 기사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제목에서 여실히 보여주는 문제점은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마사회는 뒷짐만 진다. 노동 구조 개선은 당사 관할이 아니라는 마사회. 정답은 마사회만 모르는 듯하다.
신민경 기자 smk503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