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후 논의한 뒤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답변드리긴 어렵습니다”….
1시간에 걸쳐 진행된 CJ ENM의 ‘프로듀스’ 시리즈 조작 논란 사과 기자회견 내용은 한 마디로 “추후에”였다. 대표이사까지 나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논의하겠다”고 선언했지만, CJ ENM은 정작 피해자가 누구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알맹이 빠진 기자회견’이라는 비판이 예상된다.
30일 오후 서울 상암산로 CJ ENM 센터에서 ‘프로듀스’ 투표 결과 조작 논란에 관한 허민회 CJ ENM 대표이사의 사과문 발표와 실무자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7월 처음 의혹이 불거진 뒤 5개월여 만이다.
이날 허 대표는 “이번 사태는 변명의 여지 없이 저희의 잘못이다. 대표이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거듭 사죄드린다”며 고개 숙였다. “여러분이 받은 상처와 실망감을 생각하면 그 어떤 조치도 충분하지 않을 줄 안다”면서 “하지만 지금에라도 잘못을 바로잡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허 대표가 내놓은 보상안 및 쇄신안은 ▲연습생에 대한 피해 보상 ▲‘프로듀스’ 시리즈로 발생한 이익(향후 예상 이익 포함) 포기 ▲ 방송의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다.
구체적으로는 ‘프로듀스’ 시리즈로 얻은 약 300억원의 이익으로 기금 및 펀드를 조성, 공공성과 신뢰성 있는 외부 기관이 운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외부 콘텐츠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시청자위원회를 설치해 프로그램 제작 과정을 감시하게 하고, 내부 방송윤리강령을 재정비해 관련 교육을 강화토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 “피해 보상하겠다”면서 피해자 확인은 “아직”
피해 연습생에게는 금전적 보상과 더불어 향후 활동을 지원할 방침이지만, 아직 피해자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아 보상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 결과에 관한 데이터를 CJ ENM이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윤용 CJ ENM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집계된 결과치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외부에서 집계된 데이터의 원본 확인이 필요하다. 외부 업체에 원본을 요청해 조회하는 것 자체가 실무적으로 어려워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피해자와 수혜자가 확인되더라도 추가 피해 발생을 위해 이들이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CJ ENM은 투표 조작으로 데뷔가 불발된 연습생을 피해자, 투표 조작으로 데뷔조에 든 연습생을 수혜자로 규정한 상태다. 최종회 문자 투표 외 1·2차 탈락자 선정 과정에서도 제작진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돼 피해자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료 투표에 참여한 ‘국민 프로듀서’에 대한 보상 방안도 “추후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 담당은 “환불을 원하면 환불을 해드리고 기부를 원하면 기부하려고 한다”고 했다. 하용수 CJ ENM 경영지원실장은 “통신사를 통해 일괄 환불할 수 있는지 확인 중인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면서 “조만간 피해 보상 및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 다시 한번 말씀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 아이즈원·엑스원 활동 재개 지원하겠다는데 소속사와 협의는 “아직”
허 대표는 또한 ‘프로듀스48’로 데뷔한 그룹 아이즈원, ‘프로듀스X101’ 출신 그룹 엑스원의 활동 재개를 지원하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멤버들 및 소속사들과 협의도 마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활동 재개 시기, 조작 논란으로 인한 휴지기를 계약 기간에 포함할지는 물론, 활동 재개의 근거가 되는 소속사들의 동의 여부에 대해서도 CJ ENM 측은 “추후 논의한 뒤에 말씀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 혐의 인정한 안준영 PD·김용범 CP, 거취 결정은 “아직”
조작을 자행한 안준영 PD와 김용범 CP 등 제작진 3명의 거취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현재 위치, 향후 징계 및 인사 조치 계획 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지만, CJ ENM 측은 “재판 결과가 나온 이후에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을 아꼈다. 현재 세 사람의 업무는 중단된 상태로 전해졌다.
안 PD 등은 사기,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준비 절차를 밟고 있다. 안 PD는 기획사 관계자들에게 수천만원 상당의 술 접대를 받은 혐의도 있다. 제작진 측 변호인은 앞선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 사실 대부분을 인정했지만, 범죄 사실이 성립되는지는 법리적으로 다투겠다고 밝혔다.
접대 의혹을 받는 소속사들과의 문제도 여전히 엉켜 있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울림엔터테인먼트, 어라운드어스 등의 기획사 관계자 5명이 안 PD에게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그런데 이들 중 데뷔조를 배출해낸 기획사가 있어, 이들이 데뷔조 활동으로 얻은 수익을 향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질문이 나왔다. CJ ENM이 접대와 조작으로 수혜를 얻은 소속사의 수익을 고발 등 조치로 환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CJ ENM의 답변은 이번에도 이랬다. “지금 뭐라고 답변 못 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