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시상식의 딜레마

가요 시상식의 딜레마

기사승인 2020-01-09 16:40:06

지난 8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9회 가온차트뮤직어워즈.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는 가수가 수상자로 호명되자 장내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시상식이 생중계되던 온라인 방송 플랫폼의 채팅창에선 “갑분사”(갑자기 분위기 사재기)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인지도 낮은 발라드 가수가 수상할 때마다 ‘사재기냐’는 질문이 나왔다. 급기야 디지털 음원부문 6월 올해의 가수로 선정된 그룹 바이브 멤버 윤민수는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이브는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팀이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는 데 대한 항변이었다.

가온차트뮤직어워즈를 주최하는 한국음악콘텐츠협회는 국내 10여개 주요 음악서비스 사업자와 이동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매출 데이터 및 국내 주요 음반 유통사, 해외 직배사의 오프라인 음반 판매량을 총 집계해 ‘가온 데이터’를 매긴다. 음원·음반 부문 올해의 가수는 이 데이터만으로 가려진다.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국장은 “투표나 심사위원 평가 없이 100%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상하는 것이 가온차트뮤직어워즈의 원칙이자 차별점”이라며 “사재기와 관련해 실질적으로 밝혀진 정황이 아직 사재기에 관해 실질적으로 밝혀진 부분이 없기에 올해도 원칙에 따라 시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언론사가 주관하는 골든디스크어워즈 집행위원회는 올해 “음원 차트 신뢰성이 떨어졌다”면서 심사 기준에서 음원 이용량의 반영 비율을 기존 70%에서 60%로 줄였다. 대신 음악 전문가 심사 비율을 40%로 높이고 전문가 평가단의 수도 늘렸다. 골든디스크어워즈 집행위원회 6명과 음악방송 PD 10명, 대중음악 평론가 4명, 대중문화 담당 기자 30명 등이 전문가 평가단으로 참여했다. 

차트와 가장 동 떨어진 시상을 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서비스 사업자들이 참여하는 시상식이다. 카카오가 주최하는 멜론뮤직어워드는 음원 성적 80%와 투표 20%로 톱10 가수를 선정했지만, 2월과 7월 월간 차트에서 각각 1위한 우디와 장혜진&윤민수는 수상하지 못했다. ‘퍼포먼스상’ ‘뮤직비디오상’ ‘핫트렌드상’ ‘핫스타상’ 등의 수상자가 아이돌 가수로 채워지는 동안, 우디나 임재현, 송하예 등 음원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한 가수들은 지워졌다. 아이돌에게 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자신들이 공정하다고 자부하는 음원 차트에서 호성적을 낸 가수들을, 시상식에 초대하지 못하는 주최 측의 딜레마를 말하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각 시상식 측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판단해 나온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사재기 의혹을 받는 가수에게 상을 주자니 대중이 미심쩍어 하고, 상을 주지 않자니 차트의 순위 왜곡을 인정하는 꼴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게 시상식의 딜레마라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뿐만 아니라 가요 시상식에는 (주최 측과) 가수·소속사와의 관계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며 “음악 유통사나 파급력 있는 미디어가 ‘한국대중음악시상식’처럼 평론가나 대중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시상식을 연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욱 주목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 사진=네이버 브이라이브 방송화면·골든디스크사무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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