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오!” 영국 록 밴드 퀸의 내한 공연이 열린 18일 오후 7시12분, 서울 경인로 고척스카이돔. 회색 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남성 관객이 퀸의 보컬 故 프레디 머큐리를 흉내 내며 선창하자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일행인 듯한 두 여성이 민망하다는 듯 남성의 팔뚝을 팔싹 때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에-오”로 시작된 외침은 “에-오↗” “에레레로로↘”까지 이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2만2000여명 관객의 요동치는 마음을 대변한 선창이었다.
퀸의 공연에선 혈기와 관록이 함께 질주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했다. 칠순을 넘긴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는 하지만 여전히 육중하고 날카로운 밴드의 연주를 들려줬다. “여러분께 딱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저와 같이 노래를 불러 주세요.” 미국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의 가수 아담 램버트는 관객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램버트는 29년 전 세상을 뜬 故 프레디 머큐리를 대신해 2012년부터 퀸과 함께 공연하고 있다.
1971년 영국에서 결성해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2004년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등에 올랐지만, 퀸은 그간 젊은 세대에겐 낯선 존재였다. 2014년 8월 록 페스티벌 ‘슈퍼소닉 2014’의 헤드라이너로 서울에서 공연했을 당시에도 지금만큼 화제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2018년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국내에서 10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얘기가 달라졌다. 2030세대의 반응이 특히 대단했다. ‘전기 영화’로서의 평가는 갈렸어도, 이 작품이 상업적인 드라마로 퀸 음악의 폭발력을 다시금 깨우치게 했다는 점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 머큐리가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를 ‘떼창’하는 관객들의 모습에 감격하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울컥하다. 이날 공연에선 메이가 이 노래를 불렀다. 궁정극장처럼 화려하던 무대 뒤 전광판도 이때만큼은 어두운 밤하늘처럼 내려앉았다. 메이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내 인생의 사랑이여, 당신이 날 아프게 해요’ 객석은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퀸의 국내 팬클럽 ‘퀸 포에버’가 준비한 이벤트였다. 무대 말미엔 생전 머큐리의 영상이 등장했다. 머큐리와 메이 그리고 한국 팬들의, 시공과 생사를 뛰어넘은 합창이었다.
밴드의 프런트맨이었던 머큐리는 생전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램버트가 후임 자리를 제안받고 부담을 느낀 것도 당연했다. 머큐리는 목소리만 독보적인 것이 아니었다. 굴곡진 삶은 그의 음악에서도 묻어나온다. 대표적으로는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이 그렇다. 이 음반을 만들 당시 머큐리는 건강이 상당이 악화된 상태였다. 메이는 그가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정작 머큐리는 보드카를 한잔 들이킨 뒤 이 곡을 한 번에 녹음했다고 한다. 머큐리는 ‘쇼 머스트 고 온’이 공개된 지 6주 만에 숨겼다.
이런 처절함을, 노래에 담긴 머큐리의 역사, 또 그에 대한 팬들의 기억과 감상을 램버트는 과연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램버트는 앞선 기자회견에서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음악 해석으로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무대는 실제로도 그랬다. 머큐리의 흔적을 의식하는 대신 자신의 스타일대로 노래를 불렀다. 머큐리와 달리 팝에 뿌리를 둔 그의 창법이 새로운 느낌을 줬다. 램버트는 “나도 프레디 머큐리를 사랑한다”며 “오늘 밤 퀸과 머큐리를 찬양하자”고 외쳤다.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apshody)로 막을 내린 무대는 머큐리의 생전 공연 영상으로 다시 밝아졌다. 노란색 재킷을 입은 머큐리가 “에-오!” 선창하자, 관객들이 “에-오!” 화답했다. 무대로 돌아온 퀸은 ‘위 윌 락 유’(We Will Rock You)와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으로 다시 장내를 달궜다. 주최 측에서 제공한 선곡표에는 없었던 깜짝 앙코르였다. ‘우리가 챔피언이라네, 친구들이여’ 45세를 일기로 영면한 머큐리의 유산이 이날 ‘청춘’의 모습으로 다시 불타올랐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 사진=현대카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