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 중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5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중공동행동과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해리스 주한 미대사 추방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주재국 동향을 본국에 잘 전달해야 할 대사가 오히려 주재국을 압박하고 있다”며 “식민지에 파견된 총독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 개별 관광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해리스 대사는 지난 16일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남북 협력 문제를)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다루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북한 개별 관광 추진에 있어 한미 간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들 단체는 “해리스 대사의 망발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며 “남북관계 발전에 대해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워킹그룹을 통해 협상하라고 한다. 세컨더리 보이콧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방위비 분담금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과 관련해 “해리스 대사가 지나친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해리스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상 기피 인물)’로 지정해 추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20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해리스 대사가) 이렇게 험한 말을 하고 주권침해 행동을 하면 기피 인물로 분류가 돼서 배척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페르소나 논 그라타는 라틴어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대사나 공사 등 외교사절 중 특정 인물을 접수국 정부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 이를 선언한다. 이 선언이 있으면 외교관으로서의 면책특권이 사라진다. 타국 외교관에게 부과할 수 있는 가장 큰 처벌이다.
지난 2018년 영국에서 러시아 이중스파이였던 세르게이 스크리팔에 대한 암살 시도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은 이 사건 개입을 이유로 러시아 외교관 23명에게 페르소나 논 그라타를 선언, 추방했다. 미국과 호주, 캐나다, 독일, 덴마크,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우크라이나 등도 같은 이유로 러시아 외교관에게 페르소나 논 그라타를 선언했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2017년에는 자국 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피살사건’을 이유로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해 추방 조치했다.
우리 정부가 해리스 대사에게 페르소나 논 그라타를 선언할 여지는 현저히 적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최우방국이다. 외교부는 해리스 대사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 지정 가능성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는 특별히 말씀드릴 사항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7일 “해리스 대사는 국무장관과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한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대사를 크게 신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