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 #“이런 교과서라면 배워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무식한 자식이 낫습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모인 보수단체 회원들은 “옳소!”라며 저마다 목소리를 보탰다. 집회 장소에는 찢어진 교과서 조각이 흩날렸다. 계단 위에 선 회원 중 한 명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었다.
보수단체에서 중·고등학교에서 쓰일 검정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는 주장을 내놨다.
국사교과서연구소, ‘문재인 역사교과서결사반대 학부모단체연합’ 등 보수단체는 6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홍보물 역사교과서 당장 폐기하라’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초등학교 사회교과서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문재인 좌파정부에 대한 찬양 일색”이라며 “사악한 역사교과서를 규탄하고자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좌파정권이 무너진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교과서로 배우면 또 다시 좌파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이경자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대표는 중·고등학교 검정 역사 교과서에 대해 “책이 아니라 문재인 정권의 홍보물”이라며 “이런 독약 같은 교과서를 아이들에게 줄 수 없다. 책을 반드시 불태우겠다”고 강조했다.
집회 장소에는 중·고등학교 검정 역사교과서의 일부분이 확대돼 전시됐다. 교과서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기술과 당시 촛불집회 사진 등이 담겼다. ‘통일을 위한 남과 북의 노력’ 단원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은 사진 등이 게재됐다.
이들 단체는 고등학교 한국사 검정 교과서 8종 중 7종에 ‘문제’가 있다고 질타했다. 동아출판·미래엔·비상교육·씨마스·지학사·천재교육·해냄에듀 등이다. 지학사와 천재교육의 중학교 검정 역사교과서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세월호참사, 촛불집회에 대한 집중적인 기술과 문 대통령·김 위원장의 사진을 실었다는 이유 등이었다.
이날 집회를 생중계하기 위해 참석한 보수 유튜버 10여명은 “교과서에서 북한을 찬양하고 있다. 매우 심각하다” “이건 문재인의 선거 홍보용이다” “왜 다 부정적인 내용만 교과서에 기술했느냐”고 열변을 토했다.
다음달부터 중·고등학교에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도입된다. 지난 2017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가 폐지된 지 약 3년만의 일이다. 중학교 검정 ‘역사’ 교과서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고등학교 검정 ‘한국사’ 교과서에는 개항기 이후부터 근현대사 위주의 내용이 담겼다. 기존 교과 과정에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를 반반씩 배웠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부분이 늘어나며 일제의 강제동원 등 침탈사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도 가능해졌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모호한 기술도 개선됐다. 6·25 전쟁은 북한의 남한 침략(남침)으로 시작됐다고 명시됐다. 모든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북한 정권 수립’이라는 통일된 표현이 사용됐다.
현직 교사는 검정 역사 교과서에 대한 보수단체의 비난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경기 양주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김태우씨는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또는 촛불집회를 크게 언급하지 않는 교과서도 있다”며 “교과서마다 차이가 있다. 촛불집회 등에 대한 기술을 이번 검정 교과서의 특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보수단체에서 과거부터 역사교과서를 정치적으로 해석, 편향됐다고 주장한다”며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오히려 교육이 정치에 자꾸 휘말리게 된다. 정상적인 역사교육을 하는 데 방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도 검정 교과서에 대한 보수단체의 주장은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었다. 김한종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교과서에서 역사를 어디까지 다뤄야 하는지 논란이 있지만 현대사까지 다루는 것이 세계적으로도 일반적인 추세”라며 “한국사에서 남북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남북 대표가 만나 주요 현안을 논의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만약 현행 검정 교과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집필 기준에 따라 본인들의 생각을 담은 교과서를 제작하면 된다”면서 “학생들은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획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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