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장미야 조형미술학(문학박사)박사. 서양화가
▲ 2020년 올해로 삼일절은 101주년, 보통 독립선언일은 독립기념일로 삼는 만큼 독립 101주년, 건국 101주년 이라고 한다. 삼일절을 맞이하여 전라북도에서 일제 강점기에 예술의 혼을 불태우지도 못 하고 유명을 달리한 화가 진환과 그의 작품을 떠올려 본다.
▲ 진환(陳瓛)
본명은 ‘기용(棋用)’이었으나 미술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환(瓛)’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913년 6월 23일 전북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무장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4년 21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1938년에 졸업하였다. 이어 같은 해에 ‘동경공예학원’ 순수미술연구실에 입학하여 2년 동안의 수학을 마치고 학원 강사로 임명받았다. 또한 같은 해 9월에는 동 학원의 부속기관인 ‘동경아동미술학교’의 주임직도 겸임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진환은 집안에서 설립, 운영하던 공민학교에 나가 교육 사업을 했다. 광복 이후 부친이 설립한 ‘무장농업학원’의 원장에 취임했으며 ‘무장농업학원’이 초급중학교로 승격되자 초대 교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이후 1950년에 6·25 전쟁의 발발로 생활고와 미술 자체에 대한 번민으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1951년 1·4 후퇴 때 고향으로 피난을 가는 중 고향마을 산 변두리에서 유탄에 맞아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으며 당시 나이 38세였다.
▲ 고창 지역의 사람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며, 주 원동력은 ‘소’가 담당했다. 진환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담긴 ‘소’그림은 그의 고향과 무관하지 않다 하겠다.
그에게서 보이는 농촌풍경중 하나는 ‘소’에 있다.
고향에서 보던 ‘소’에 대한 애정은 1940년대 식민지하에 그려진 시대 상황의 반영물이라고 하겠다. 당시 시대상황과 더불어 화가의 한 조형화로 이해했다. 일제하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민족의 앞날을 위한 염원을 ‘소’라는 대상에 의탁하며 한국적인 서정성과 토속성을 짙게 풍기고 있다.
민족애와 향토애가 강한 화가 그리고 교육자로서 자신의 삶을 식민지하에서 ‘소’의 매체를 통하여 우리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현실극복의 염원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 조형적 관점에서 표현주의 양식을 토대로 다소의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이입하여 상징성을 부각하는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정교한 세부묘사에 연연하지 않고 평면화된 구도와 단순성과 공간구성의 특이성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는 소의 형상은 일필휘지 식으로 소략화 되어 있으며 색에 있어서도 황토색 위주로 절제되어 있다.
▲ 그의 작품은 당시 시대 상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은 물론 한국적인 미감이 배인 독창적인 표현을 펼쳐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전북 나아가 한국 근대미술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자취를 남긴 천재적인 화가임에 공론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비록 관련 자료와 몇 점 안 되는 유작만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하기에 부족하나 그의 학술적, 조형적 발굴 작업은 앞으로도 지속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민족 정서와 견고한 기본기를 갖추어 표현된 그의 작품 세계는 시대의 흐름을 불문 하고 각별한 주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