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모리의 정원’이라는 작은 우주

[쿡리뷰] ‘모리의 정원’이라는 작은 우주

‘모리의 정원’이라는 작은 우주

기사승인 2020-03-26 07:00:00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개미는 걸을 때 어느 다리부터 움직일까. 나무 위 개미를 한참 동안 관찰하던 모리카즈(야마자키 츠토무)는 ‘왼쪽 두 번째 다리’라고 특정한다. 옆에 있던 사진작가 후지타(카세 료)와 가시마(요시무라 카이토)도 함께 엎드려 개미의 걸음을 지켜본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해도 도무지 알 수 없다. 잘 보라는 모리카즈의 말에 두 사람은 한 번 더 개미 다리에 집중한다. 그래도 왼쪽 두 번째 다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영화 ‘모리의 정원’(감독 오키타 슈이치)은 잘 보이지 않는 정원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 화가 모리카즈는 30년 동안 자신의 정원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간다. 그는 대부분 시간을 자신의 정원에서 보낸다. 개미를 관찰하기도 하고 연못의 물고기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낯선 돌을 발견해 긴 시간 들여다보기도 한다. 눕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고 서 있을 때도 있다. 그렇게 지켜온 그의 정원 옆에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모리의 정원’은 신선 같은 기인 모리카즈와 그의 정원이란 낯선 우주를 친숙하고 편한 공간으로 만들어간다. 처음엔 다큐멘터리처럼 지루한 영상으로 보였던 햇살과 바람, 곤충들의 모습이 시간이 갈수록 흥미롭고 기분 좋게 다가온다. 모리가 머무는 곳이 어떤 곳인지 이해하게 되고 그가 느끼는 기분과 감정을 조금 맛보게 되면, 정원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느껴지게 된다. 자꾸 개미의 다리를 관찰하고 싶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모리카즈라는 독특한 인물을 설득해내는 카메라의 시선과 거리 조절도 인상적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나 ‘나는 자연인이다’에 등장할 법한 사연이지만, 영화는 폭력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어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인내를 갖고 그를 지켜보며 그의 본질에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마을 사람들, 혹은 뭔가를 요청하러 방문하는 이들, 아파트 주인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달라지는 모리카즈의 반응은 그를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어준다. 커다란 사건 없이도 영화는 모리카즈라는 인물이 주는 의외성과 생동감으로 흥미진진해진다.

지난 1932년 지은 자택에서 1977년 사망할 때까지 집에서 살았던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정원에만 있는 덕분에 1974년이란 시대적 배경이 잘 체감되지 않는다. 모리의 아내 히데코 역을 맡은 배우 키키 키린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26일 개봉. 전체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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