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말만 많고 ‘노오력’ 없는 디지털 성범죄 대책

[기자수첩] 말만 많고 ‘노오력’ 없는 디지털 성범죄 대책

기사승인 2020-04-02 00:03:00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 디지털 성범죄 대책을 읽는 정부의 목소리가 공허하다.

입법·행정·사법부가 입을 모아 조주빈의 엄벌을 약속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백혜련·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희경 미래통합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앞 다퉈 디지털 성범죄 예방·처벌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통합당·정의당·국민의당 등 주요 원내 정당들의 21대 총선 공약집에도 모두 n번방 사건의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공약이 포함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나섰다. 그는 지난달 23일 “경찰은 ‘박사방’ 운영자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아야 한다”며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에는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TF를 구성해 종합적인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법부는 판사도 바꿨다. n번방 사건 피고인 재판을 맡은 오덕식 판사의 성인지 감수성이 논란이 되면서다. 그는 지난 2018년 가수 고(故) 구하라씨를 불법 촬영, 폭행·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최종범의 1심 재판을 맡아 불법촬영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오 판사의 교체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43만여명이 동의했다. 서울중앙지법은 n번방 사건 피고인의 담당 재판부를 오 판사가 소속된 형사20단독에서 형사22단독(박현숙 판사)으로 재배당했다.

그러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n번방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들이 20대 국회에서 처리될 확률은 희박하다. 국회는 지금 선거운동에 몰두 중이기 때문이다. 정의당과 여러 원외 정당들이 n번방 관련 법안 ‘원포인트 처리’를 위한 국회를  이달 안에 소집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거대 양당은 요지부동이다.

n번방 가해자에 철퇴를 예고한 사법부도 솜방망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1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 검거되지 않은 n번방 가해자들에게 “아주 강한, 가장 센 형으로 구형을 당할 것이다“라며 “빨리 자수해서 반성하고, 이 범죄를 근절하는 데 협조하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나흘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박진환 부장판사) 재판부는 최종훈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최종훈은 정준영을 비롯한 동료 가수들의 집단 성폭행·불법촬영·불법촬영물 유포 범행에 가담해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n번방 소탕 계획만으로는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 n번방의 26만 가담자들은 텔레그램을 대체할 다른 플랫폼에서 헤쳐모일 것이다. 지난 1999년 ‘소라넷’을 시작으로 20년째 횡횅하는 불법촬영 범죄·불법촬영물 유통시장이 이를 방증한다. 국회의 적극적 입법, 법원의 엄중한 판결이 없다면 디지털 성범죄 근절은 요원하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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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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