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찬홍 기자 = “여당 견제할 정당이 없어 우려된다.”
지난 15일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함께 180석을 확보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른 총선에서 여당이 거둔 가장 압도적인 승리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사수한 103석에 그쳤다.
제1당이 된 민주당은 국회의장과 국회 주요 상임위원장직을 확보하게 됐다. 국회의 입법활동 대부분도 자유롭게 행할 수 있게 됐다. 단독으로 개헌안을 의결하는 것을 빼고는 국회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사실상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에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나는 통합당 때문에 투표했다 = 쿠키뉴스가 자체적으로 총선 당일인 15일부터 17일까지 약 3일간 일반시민 30명을 대상으로 ‘어떤 당에 투표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 중 과반수 이상이 여당에 투표했다고 밝혔다. 여당을 뽑은 이유는 ▲통합당 견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문재인 정부의 후반부 국정안정 등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임모씨(28)는 “현재 코로나19가 가장 큰 이슈라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봤다. 여당이 잘 대응하고 적절한 방향을 제시한 반면, 여당은 트집을 잡는데 급급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부천에 사는 김모씨(41)도 “코로나 대처에 있어 아쉬움은 있으나 주어진 상황에서 잘 극복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통합당에 대한 불신 때문에 범여권 정당을 투표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특히 국정농단 이후 야당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는 이들도 있었다.
대전의 최모씨(24)는 “가장 큰 이유는 통합당을 견제하기 위함이 컸다. 일부는 소수정당을 투표해야 한다고는 하고 나도 다양한 정당이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지만, 한국에서 다당제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고등학생 때부터 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는 거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런 가르침을 실천한 투표였다”고 했다.
대구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양모씨(34)도 “제1야당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통합당이 어떤 대안 제시도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외치며 분열을 조장하는 것을 보고 실망감이 매우 컸다”고 민주당을 뽑은 이유를 설명했다.
반대로 야당에 투표한 이들 중 수원에 거주 중인 지모씨(28)는 “현재 정부의 정책은 확실한 문제가 있다. 탈원전 정책도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며 “노조들이 판치는 비정상적인 사회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조국과 같은 비도덕적인 인물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끌어냈다”고 현 정부에 대한 반발심이 표심에 담겼다고 했다.
광주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다는 조모씨(40)는 “현 정권은 자영업자들에게 너무 불합리적인 것 같다”며 “우리나라 살기도 바쁜 와중에 중국 눈치 너무 보고, 미국이랑은 돌아서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통합당에 한 표를 행사하게 된 배경을 털어놨다.
이밖에 군소정당에 투표한 이들은 거대 양당들의 변화를 요구하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투표에서 거대 양당들이 의석확보만을 위해 비례위성정당을 내세운 ‘꼼수’에 대한 실망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산에 살고 있는 최모씨(27)는 “소수정당을 향해 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다보면 거대정당들도 긴장하고 바뀌려하지 않겠냐”고 했다. 의정부의 주모씨(44)도 “거대 양당제의 폐단은 심각하다. 특히 조국 사태 등으로 이념 간 대립이 극명하고 지역갈등도 심화되는 분위기”라며 “제3당 원내교섭단체에 힘이 실려 견제와 대화, 타협을 위한 길이 열려야 한다는 생각에 전략적으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총선 결과, 마음에 드십니까? = ‘총선 결과가 마음에 드는가’는 질문에는 30명 중 13명이 투표 결과에 ‘만족한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5명은 ‘보통’이라고 답변을, 8명은 ‘아쉽다’, 4명은 ‘불만족’이라고 답변했다.
서울에 거주지를 둔 이모씨(30)는 “범여권이 다수석을 차지한건 만족스럽다. 미래통합당은 그동안의 만행에 대해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여당을 견제할 정당이 없는 것은 우려가 된다”고 했다.
대구 주민인 김모씨(37) 역시 “코로나19 확산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집권여당의 과반의석 차지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 좋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들이 힘을 실어준 만큼 결과가 좋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선 결과에 상관없이 표심이 늘었다는 점에서 만족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이번 총선은 코로나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전체 선거인 4399만4247명 중 2912만8040명이 선거에 참여했다. 이는 1996년 15대 총선 투표율 63.9% 이후 최고 기록이자, 2000년대 들어 두 번째 60%대 총선 투표율이다.
이를 두고 서울의 하모씨(31)는 “원하는 사람이 뽑히지는 않았지만 28년 만에 최고 투표율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고 답변을 내놨다.
이에 반해 총선 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기도 안산의 송모씨(23)는 “과거에도 좋았던 적이 크게 있었던 적이 없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꼼수 위성정당의 등장으로 연동형비례대표제 취지가 무색해지고, 결과적으로 다시 거대정당 독식 체제가 이뤄졌다”고 불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에서 사는 배모씨(42)는 “두렵다. 여당 단독 180석을 달성함으로써 국회가 집권여당, 정권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이 주어졌다”며 “문재인 정부나 현 집권여당의 경우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 건전한 비판조차 들으려하지 않고, 독단적이거나 일방적인 모습을 종종 보였다. 이런 우려가 극대화 될 것이란 걱정이 크다”는 의견도 내놨다.
한편 응답자들 중 대다수가 21대 국회가 거대 양당 체제로 전환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이번 선거를 통해 확보한 의석을 모두 합치면 총 283석이 된다. 이는 전체 의석의 94.3%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군소정당들의 입지는 줄어들었고, 응답자들은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의왕에 거주 중인 최모씨(47)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한 첫 선거라 기대하는 바가 컸는데, 통합당의 위성정당을 시작으로 결국은 거대양당이 군소정당을 잡아먹는 모양새가 된 것 같다”며 “선관위에서 애초에 위성정당을 허가한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한 의미가 없지 않나 싶었다. 다음에는 다양한 군소 정당들이 여러 의제를 두고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포항에 거주 중인 박모씨(23)도 “여당 우세 지역은 여당이, 야당 우세 지역은 야당이 차지했다. 더구나 너무 많은 의원석이 다당제를 채택해 이용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유독 거대 정당들에게 배분된 점이 안타깝다”며 지역주의 심화와 거대양당제로의 회귀로 인한 극한대립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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