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창궐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는 아시아를 거쳐, 유럽과 미주, 중동, 아프리카 대륙 등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우리는 순위 매기듯 확진환자의 수가 많으면 우려를, 적으면 안심하곤 한다. 확진자수는 예기치 못한 감염과 그로인해 격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의 좌절과 고통, 분노는 말해주지 않는다. ‘코로나19 그리고 위기의 세계’ 1부가 팔레스타인인과 로힝야가 직면한 인도주의 재앙을 다뤘다면 2부에서는 코로나19 이후 바뀐 삶의 여로를 쫓아가본다. 첫 편은 확진자를 돌본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확진자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쿠키뉴스] 김양균 기자 = 트라우마; 심리적 외상.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 한 후에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부적응적 반응.
“그냥 죽으세요.”
나는 이 한 줄을 보고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확진자의 동선이 적혀 있던 기사. 그리고 거기에 달린 댓글. 가장 많이 좋아요가 달린 댓글. 그냥 죽으세요. 나는 기분을 묻는 코로나19 보건복지부 통합심리지원단 소속 상담사에게 “무기력하다”고만 말했다.
격리병동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잘 자고 잘 먹고 열심히 치료를 받는 것 뿐. 그런데도 진단검사결과에서는 매번 바이러스가 나왔다. 기다림은 검사 결과가 ‘음전’이 될 때까지 계속됐다. 처음 감염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무서웠다. 두려움은 곧 불안함으로, 자꾸 늘어지는 회복 기간 동안 불편함으로, 다시 무기력으로 바뀌었다. 음전이 되지 않는 것은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는 아닐까. 면역력이 원래 약했던 걸까.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는 열도 없고, 기침도 나지 않는 ‘무증상자’다. 나는 똑같은 나인데, 예전의 내가 아닌 것만 같다. 격리병동을 나가고 싶지만, 다시 감염돼 이곳에 오는 것은 아닐까. 불안감은 시시각각 나를 조여 온다.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녔으니 차라리 그냥 죽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로 어떻게 돌아갈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가족은, 친구는, 직장 동료는 치료를 잘 받으라고 한다. 금방 낫고 다시 보자고 한다. 나는 이렇게 옴짝달싹하지 못하는데, 그들은 너무 쉽게 말한다. 불 꺼진 병실에서 산소마스크를 낀 옆 병동의 확진자가 눈을 감고 있다. 나는 저렇게 상태가 나쁘지 않은데, 왜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
수일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음전이었다. 기쁠 것 같았는데 아무 느낌이 없었다. 어떻게 퇴원 수속을 하고, 관리 지침의 설명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자꾸 자고만 싶었다. 한 달 만에 나온 세상은 똑같았지만 나만 달라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몇 번이고 손을 씻었다. 혹시 바이러스가 달라붙어 있진 않을지 몇 번이고 손을 씻었다….
◇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것
“음전 판정을 받아 격리해제가 되어 적응과 복귀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의 설명이다. 심 부장은 “확진자는 ‘왜 하필 나에게’란 무력감, 좌절감, 분노 등을 토로하는데, 음전이 안 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특히 무증상 감염자일 경우, 증상이 없음에도 바이러스가 검출되다보니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포자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젊고 건강했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감염되다 보니 납득이 잘 안되어 좌절하게 되는 것이죠.”
중증도에 따라 다르지만 확진자가 격리치료를 받기 시작해 격리해제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24일 가량. 외부와 단절되어 지내다 일상으로 복귀한 이들의 체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다. “완치가 돼도 마냥 기쁘지가 않은 겁니다. 재감염에 대한 공포와 자신이 혹여 누군가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지 모른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죠. 이렇듯 자신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면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심 부장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활력을 유지하는 것, 분열대신 화합의 마음가짐을 갖게 하기 위한 도움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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