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양균 기자 = 영화 ‘조이’(2015년)는 미국의 여성 사업가 조이 망가노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허리우드 영화다. 영화는 무일푼의 싱글맘 조이가 우여곡절 끝에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코미디 반 스푼에 판타지적 요소를 마구 들이부어 그려낸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혹자는 ‘나도 할 수 있다’고 마음먹을 수도, 또 다른 이는 ‘영화 같은 소리’라며 냉소를 흘릴지 모르겠다.
이런 영화가 잘 팔리는 까닭은 불만족스러운 현재 때문일 터다. 지긋지긋한 회사에 사표를 던지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 적,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한번은 있으리라. 물론 당장의 ‘먹고사니즘’의 두려움에 참고 버티고, 버티지만. 상상을 현실로 만든 사람들은 가운데에는 성공한 이들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내가 만난 여러 유경험자들은 말한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그렇다. 삶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영화가 끝날 때쯤 22개월 전에 만났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서른하나, 사라 수경(사진). 당시 그는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이국적 외모, 와인이라는 ‘고급진’ 제품을 취급하는 그에게는 종종 방송국의 러브콜이 왔다. 사라 수경은 업계에서 퍽 유명인사가 됐던 것 같다. 나는 그와의 첫 인터뷰 후 다음처럼 썼다.
“초를 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장밋빛 비단길만이 있진 않을 것이다. 목표 가까이 닿을 수도, 그 반대의 경우를 맞을지도 모른다. 내일 당장 회사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는 곳이 바로 스타트업계 아닌가. 한 해 동안 야무진 각오와 의지, 결기로 시작한 숱한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그보다 많은 곳이 문을 닫는 게 이 바닥의 현실일터다.” 서른 셋, 다시 만난 사라 수경의 눈은 2년 전보다 깊어져 있었다.
- 방송에 출연한 본인 모습이 마음에 들던가요?
“음…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요.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얼굴은 외국사람 같은데 한국말은 잘 하니까 어색해하는 것 같았어요. 외국인에게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 정해져 있는데, 전 한국을 너무 잘 아니까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게 되는거에요. 사람들은 절 어느 ‘카테고리’에 넣고 싶은 걸까요? 다문화? 여성 사업가? 어느 한 틀로 규정지어지는 게 불만이에요.”
- 코로나19 여파에서 사라 수경도 자유롭진 않았던 거죠?
“작년 가을과 겨울은 좋았어요. 기업 출강도 많이 들어왔고 무척 바빴거든요. 문제는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었어요. 2월부터 4월까지는 회사가 데스밸리(Death valley)였고, 지금이 가장 힘들어요. 여전히 비즈니스 모델은 만들지 못했고, 비즈니스 파트너도 떠났으니 뭐 할 말 다했죠.(웃음)”
- 조심스럽긴 한데, 왜 사업을 접지 않는 거예요?
“그만둘까 싶기도 했는데 아쉬움이 남아서요. 조금 더 버텨 보려고요. 그래도 성과가 없으면 그땐 정말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려고요.”
- 결국 기대했던 삼십대 중반과는 좀 다르다?
“제가 창업한 회삭(수드비)가 성공하길 바랐죠. 고민을 하면서 자책도 많이 했어요. 어떤 틀 안에 갇혀 있으니까 그렇게 힘들었던 건 아닐까. 자유로워지려고 창업을 했는데 도리어 얽매인 느낌이랄까요? 내일의 전 지금보다는 든든해졌으면 좋겠어요.”
- 그 든든함이란 게 뭘 말하는 거죠?
“좋은 사람들, 그리고 일이 자리 잡는 거요.”
- 그래서 여전히 고민은 진행 중인 거군요.
“이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할 나이가 된 게 아닐까. 지금도 바쁜데 출산을 하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내일을 계획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계획을 안 하기도 어렵고.(웃음)”
- 전 꼰대가 되기 싫으니까. ‘그 나이땐 원래 고민이 많아’라고 말하진 않을래요.(웃음)
“아침 식사에서 부모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 많이 듣는 말은 ‘너무 고민하지 마라’라든가 ‘여유를 찾도록 해봐’ 같은 거예요.(웃음)”
- 고민의 답은 찾았어요?
“아직이요. 도대체 어디서 살아야 행복할까. 어느 한 곳에서 정착해 살면 행복하지 않을까.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데, 다시 생각하면 내 인생인데. 부모, 결혼, 출산 보다 내 인생을 앞에 둬야 하는 건 아닐까… 결론은! 고민의 연속이에요.(웃음)”
- 어디서 살아야 행복하겠냐는 질문은 좀 재밌네요.
“저와 가장 잘 맞는 곳을 찾는 과정에 있다고 해둘게요. 어느 한 곳에 오래 있으면 답답하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이제 다른 걸 찾으러 가자’ 뭐 이런 거죠.”
- 그렇지만 사라 수경과 저, 사실 우리 모두 다이내믹한 삶을 모두가 꿈꾸지만 그게 또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창업을 더 하고 싶은 건지도 몰라요. 다양성을 꿈꾸니까요. 어느 한 카테고리로 분류되기에 우린 너무 세계화된 세상에 살고 있으니깐.”
- 본인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건 뭐예요?
“하려는 걸 못했을 때, 그보다 못할 수도 있다고 느낄 때 가장 불안해요. 이런 불안한 생각 자체를 놓아야 하는데 그게 시간이 걸린다. 노력을 해도 제 맘대로 안 될 때가 있는 건데….”
- 가장 큰 실패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 경우에는 너무 많아서 꼽을 수도 없거든요.(웃음)
“음… 실패는 있었겠지만 실패를 실패라고 여기진 않으려고요.”
-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니, 그게 된단 말이에요??(웃음)
“내일 제가 창업한 회사를 접는다면 슬프고 아쉽겠죠. 그런데 그 실패의 과정이 어떤 삶의 깨달음을 주는 거니까, 그렇게 보면 실패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하나가 안 좋으면 다른 좋은 하나가 오는 거는 법 아니겠어요?”
- 결국 생존력이 강점이다?
“그게 그렇게 연결되나요?(웃음) 적응력이 빠르다고 해두죠.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예요.”
그간의 사정을 들으며 생각했다. ‘시간을 두고 한 사람의 삶을 관찰한다는 것은 사실 좀 잔인한 일이 아닌가!’ 그는 자주 웃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눈물 같은 미소였다고 기억한다. 그날 사라 수경이 내게 들려준 많은 이야기들은 비단 그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삼십대 초반,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언뜻 본 것 같았다.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삶은 살아지게 되어 있다. 우릴 막는 게 코로나19든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삶은 계속된다. 사라 수경도, 글을 쓰는 나도, 읽는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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