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공부하기] 화려한 조명이 이효리를 감싸면

[이효리 공부하기] 화려한 조명이 이효리를 감싸면

화려한 조명이 이효리를 감싸면

기사승인 2020-06-06 08:30:00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효리야, 너 오랜만에 연예인 같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에서 이효리를 발견한 유재석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이효리는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링까지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제주도에서 핑클 노래를 부르다 “서울 가고 싶어”라고 울부짖던 MBC ‘무한도전’ 출연 이후 6년 만이다.

연예인처럼 꾸민 외모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이날 이효리는 이전보다 한 발 앞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방송에 참여하고 이끌었다. 먼저 나서서 유재석과 함께 대화를 이끌고 적절한 타이밍에 화제를 전환했다. 게스트 출연자를 어떤 톤으로 대할지 조절했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비가 알려준 안무를 코믹하게 소화했다. 이효리는 분명 제주도에 온 유재석에게 “화가야, 뭐야”라고 툭 던지며 등장했던 몇 주 전 방송과 달랐다. 여섯 개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던 ‘가수 이효리’, 제주도에서 가끔씩 민박집을 운영하는 ‘소길댁 이효리’보다는 과거 연예대상까지 받았던 예능 섭외 1순위 ‘예능인 이효리’에 더 가까웠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이효리가 온전히 예능을 위해 서울에 온 건 꽤 오랜만이다. 2017년 6집 앨범 ‘블랙(Black)’ 활동을 제외하면, 그동안 이효리는 제주도에서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방송에 출연해왔다. JTBC ‘효리네 민박’ 시즌1, 시즌2와 JTBC ‘캠핑클럽’에서도, tvN ‘일로 만난 사이’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도 그랬다. 가끔 특유의 예능적 감각을 발휘해 웃음을 만들어내는 초능력 같은 힘을 보여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평소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 시청자들은 연예인 이미지에 가려 그동안 몰랐던 이효리의 본 모습, 결혼을 하고 제주도에 정착하며 달라진 이효리의 모습을 신기한 듯 지켜봤다. 어느 새 이효리는 슈퍼스타와 일반인의 경계에 서서, 리얼리티 관찰 예능이나 일반인 출연 예능 등 최근 방송 트렌드와 가장 잘 맞는 독특한 인물이 되어있었다.

소속사 계약까지 맺으며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예고한 이효리는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 또 달랐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웃음을 만들어내야 제 할일을 한 것처럼 느꼈던 과거의 이효리와 굳이 억지로 웃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했던 최근의 이효리가 공존했다. 이날 방송에서 이효리는 과거 이야기를 하며 비와 “사귈 수도 있었다”거나, 자신의 부부생활을 ‘사막’이라고 표현하는 등 독한 멘트를 망설임 없이 던졌다. 과거에 이효리니까 할 수 있다고, 이효리만 가능하다고 여겨진 것들이었다. 또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각자의 주장을 존중하며 때론 한 걸음 물러나는 모습도 보여줬다. 팀원 구성을 논의하던 중 “이럴 거면 유재석이 필요 없다”고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그의 의견을 동등한 입장에서 들어주려고 애썼다. 지코와 함께 등장한 광희에게 “왜 나왔냐”고 타박하는 상황극 이후에 “막냇동생 같다”며 광희를 끝까지 챙긴 것도 이효리였다.

‘올 타임 레전드’라는 전무후무한 수식어가 말해주듯, 이효리의 방송 복귀는 한 연예인의 성장 서사 정도에 그칠 일이 아니다. ‘연예대상’ 출신 여성 방송인이 유재석과 같은 선상에서 예능을 이끌어나가는 건 최근 몇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림이다. 오히려 유재석과 ‘놀면 뭐하니?’가 이효리의 페이스에 맞추고 그 과정에서 성장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이효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와 잘 안다고 믿는 기성세대 모두에게 유효하다는 점은 예능이 자꾸만 그를 소환하는 명확한 이유다.

유느님마저 타박하는 광희를 진심으로 챙겨주고 기운을 주는 ‘마더 효레사’는 그가 찾아낸 자신의 첫 번째 역할일지 모른다. 앞으로 진행될 몇 달의 방송에서 이효리는 두 번째, 세 번째 역할을 찾아낼 것이다. 아직 이효리는 서울에 와서 힐을 신고 방송 활동을 재개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제 발로 화려한 조명 속에 걸어 들어온 ‘예능인 이효리’가 이제 그 이유를 직접 보여줄 때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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