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결백’ 견딜 수 없는 추악한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

[쿡리뷰] ‘결백’ 견딜 수 없는 추악한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

‘결백’ 견딜 수 없는 추악한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

기사승인 2020-06-09 08:00:00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비 내리는 어느 날, 평범한 농가의 한 장례식장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노인들이 하나 둘 쓰러진다. 누군가 막걸리에 농약을 타서 벌어진 이날의 사고로 마을 주민 한 명이 사망하고 네 명이 중태에 빠진다.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용의자로는 급성 치매에 걸려 조문객도 맞이하지 못한 채 남편 장례를 치르던 화자(배종옥)가 지목된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에이스 변호사’로 살던 화자의 딸 정인(신혜선)은 우연히 TV에서 엄마가 체포되는 장면을 보고 급히 고향으로 내려간다.

영화 ‘결백’은 변호사 정인이 엄마 화자의 결백을 주장하며 조금씩 진실에 접근해가는 내용을 다룬다. 엉망으로 진행된 경찰의 초동수사부터, 의심스러운 목격자와 몰래 집안을 드나드는 의문의 남자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상황. 정인은 날카로운 직감과 영리한 일솜씨를 동원해 잔뜩 쌓인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모든 사건의 중심에 추 시장(허준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이 각종 추리와 논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법정쇼, 혹은 사악한 악당과 주인공의 대결을 다루는 정면 대결 스릴러와는 거리가 멀다. ‘결백’은 엄마를 지옥에서 끄집어내려다 같이 끌려 들어가는 딸의 이야기에 가깝다. 정인이 어린 시절 탈출한 고향에는 숨 쉴 곳이 없지만 엄마 화자가 있다. 아빠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던 정인이 곧장 고향으로 내려가도록 결심한 것도 엄마의 체포 소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인은 알고 싶지 않았던, 직면하기 힘든 추악한 진실을 목격한다.

그 순간 정인의 자아가 여러 개로 나눠진다. 돈 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는 변호사로서 정인, 과거 지긋지긋한 집에서 몰래 도망쳐 나온 과거의 정인, 어떻게든 엄마를 구해야 하는 딸 정인. 혼란에 빠진 정인은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안내하던 가이드의 역할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후반부에 갈수록 화자의 단단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주인공이 바뀌는 느낌까지 든다. 누군가의 욕망과 잘못으로 긴 시간 동안 벌어진 여러 사건을 마주하고 있으면,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누군가가 버텨온 삶의 무게감이 결백을 밝히고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들을 압도한다.

‘결백’은 복잡하고 빽빽하게 나열된 이야기를 잘 정리하고 길을 찾아내는 전개 방식으로 차별성을 획득한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이야기 전개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지만, 결국 스릴러보다 드라마로 흘러가 다소 예상 가능한 결말에 닿는다.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고 빈 틈을 메우는 배우들의 역할이 눈에 띈다. 특히 관객을 순식간에 몰입시키는 배종옥과 허준호의 놀라운 연기 집중력은 ‘결백’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할 지점이다. 첫 주연 영화로 ‘결백’을 고른 신혜선의 선구안과 선배 배우들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 역시 인상적이다.

오는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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