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난 죄인이다”…코로나에 멍든 청춘

[기자수첩] “난 죄인이다”…코로나에 멍든 청춘

기사승인 2020-06-11 05:00:00

[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난 죄인이다.”

지난 5일 쿠팡 물류센터 취재 중 같이 하차 작업을 했던 한 20대 청년의 말이다. 계속되는 백수 생활에 부모님 볼 면목이 없단다. 자신의 인생은 이미 망했다고도 했다. 그저 지나가는 푸념이었을 테지만 심적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다. 누군들 그 속을 모를까. 생각을 지우려는 것인지, 속죄라도 하려는 것인지, 그는 숨을 몰아쉬며 물건을 내리는데 몰두했다.

20년 넘게 누구 하나 피해 주지 않고, 건강하게만 살아왔어도 위대한 삶일 진데, 그는 왜 죄인이 됐나. 그는 자취와 생활비, 학원 수강료 등 돈을 벌기 위해 이날 근무를 지원했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에 취업은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도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사실상 시급 1만원 이상을 쥐어주는 곳은 현재 물류센터 야간 아르바이트가 유일하다고 했다. 

이곳 물류센터의 야간근무 시급은 1만1450원. 올해 최저시급 8590원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금액이다. 총 9시간 근무니 일급 10만원이 넘는다. 그런 탓일까. 최근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있었는데도 이날 지원자는 넘쳐났다.  

코로나19로 친형과 운영하던 가게가 망해 이날 물류센터를 찾았다는 청년도 만났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건만, 뜻하지 않은 악재에 많이 힘든 듯 보였다. 며칠 전에는 한 피자 프랜차이즈의 배달 기사 면접을 봤다고 한다. 그는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에서 생각을 비우고 싶었다”라며 “다가올 앞날이 더 걱정이 된다”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이날 아르바이트생의 90% 이상은 2030대였다. 앞선 이들과 같이 마땅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취업 준비 중 돈이 필요한 청년들이다. 이들은 물류센터 이외에도 택배 배달, 아파트 청소 등 일용직 아르바이트에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로 고용 지표는 연일 나빠지고 있다.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693만명으로, 1년 전보다 39만2000명 감소했다. 지난 3월과 4월에 이어 석 달째 감소다. 3개월 연속 취업자 수 감소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었던 2009년 10월∼2010년 1월 4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후 처음이다.

멀쩡한 청년을 죄인으로 만들만큼 코로나는 가혹하다. 경쟁은 언제나 치열했고, 경제는 항상 나빴지만, 코로나가 그나마 남아있던 작은 여유마저 빼앗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다. 온라인에는 벌써 ‘코로나 백수’라는 신조어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 고용시장의 취약함과 위태로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청년과 취약계층의 고용 문제를 그저 일부 현상으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다. 종래에는 전 세대가 일자리를 걸고 생존 경쟁을 하는 양상으로 번져갈지 모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자리는 가장 절박한 과제다. 누가 죄인을 만드는가. 적어도 물류센터의 청년들이 죄인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ist1076@kukinews.com

한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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