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소리꾼’ 영화와 판소리가 하나 되는 순간

[쿡리뷰] ‘소리꾼’ 영화와 판소리가 하나 되는 순간

‘소리꾼’ 영화와 판소리가 하나 되는 순간

기사승인 2020-06-26 07:30:00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의 묵직한 진심이 통했다. 별다른 설명이나 군더더기 없이 판소리 장면으로 모든 걸 보여준다. 생각하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한 한국형 판소리 뮤지컬의 탄생이다.

영화는 고위 관리의 착취와 인신매매가 횡행하는 영조 10년을 배경으로 소리꾼 학규(이봉근)의 아내 간난(이유리)이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 충격에 딸 청(김하연)이도 시력을 잃자 학규는 실의에 빠진다. 하지만 학규는 장단잽이 대봉(박철민)과 정체모를 몰락 양반(김동완)과 함께 전국 팔도를 누비며 소리를 시작한다. 눈먼 봉사 심학규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이들의 소리는 끝을 향해갈수록 소문이 퍼져 결국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소리꾼’은 납치당한 아내를 찾는 단순한 구성으로 전개된다. 생생한 캐릭터를 위한 설정이나 긴장감을 위한 액션, 예측 불가한 전개 등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요소가 많지 않다. 대신 판소리를 무기로 정면승부를 펼친다. 고수(鼓手, 북 치는 사람) 출신으로 28년 간 국악을 해온 감독은 자신이 느끼고 몸담아온 음악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단순했던 스토리는 판소리로 색을 입고 풍성해진다. 단순히 판소리를 영화에서 재현하는 차원이 아니다. 현실의 스토리와 판소리의 스토리가 좁혀지다가 하나가 되는 순간, 관객들에게 조선시대 민중들과 함께 청중이 되는 체험을 선사한다. 판소리가 영화에 완전히 녹아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첫 연기에 도전한 전문 국악인 이봉근은 소리 하나로 자신이 이 영화에 왜 필요한지 입증했다. 그가 소리를 들려주는 모든 장면이 빛나지만, 그중에서도 몸이 부서질 것처럼 온 힘을 다한 마지막 판소리 장면이 압권이다. 이전과 달리 어떤 큰 일이 눈 앞에서 벌어질 것만 같은 기적의 순간을 자신의 연기와 목소리로 구현해낸다. 가족을 구하기 위한 학규의 절실함만 담긴 건 아니다. 어딘가 잘못된 세상을 향한 분노, 뭔가 바꾸고 싶은 결기가 대사가 아닌 그의 표정과 소리에서 느껴진다. 믿을 것도, 가진 것도, 아무 힘도 없는 백성들에게 판소리가 어떤 의미였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의 음악이니까, 판소리는 소중한 것이니까 좋아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어떤 뮤지컬 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한 대단한 에너지가 이미 가득 차 있다. 판소리를 재현하는 데만 집중했을 것 같다는 우려 역시 접어도 좋다. 빈틈을 메우는 감초 배우들의 연기 호흡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음달 1일 개봉. 12세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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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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