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소]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국회의원 도전 왜? 부엌을 만들려고”

[美소]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국회의원 도전 왜? 부엌을 만들려고”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국회의원 도전 왜? 부엌을 만들려고”

기사승인 2020-06-26 15:55:50



- 국민이 원하는 ‘열린 부엌’에 필요한 정책과 법안 계속 만들 계획

- 국회 입성 포부, 보좌진과 함께 밝혀

- 보좌진은 의원의 그림자 아니 입법노동자 동지

- '의원님' 대신 ‘정훈님’으로 불러 달라



[쿠키뉴스] 박효상 기자 = 난 정치부 기자가 아니다. 카메라를 메고 현장을 누비는 사진기자다. 정치엔 관심도 없다. 단지 취재를 위해 의원들의 이름을 외우고 기사를 검색해 볼 뿐이다.

그런 나에게 시대전환 ‘조·정·훈’이라는 세 글자는 낯선 이름이었다. KBO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였던 조정훈이라면 모를까. 최근 4.15 총선 취재 당시에도 들어본 적 없었다.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건 한 편의 영상이었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던 6월의 어느 날, 영상 속 기자회견장에서 한 남성이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보좌관 모두를 소개했고, 각각의 보좌진들은 1분 30초씩 자신들의 포부와 국회 입성 소감을 밝혔다. 그들의 표정은 경직돼 있지도 긴장한 모습도 아니었다. 단지 설렌 미소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보좌진을 소개하던 남성이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흔히 보좌진은 ‘국회의원보다 빛나선 안 되는 사람’, ‘국회의원의 그림자’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영상 속 조 의원이 보여준 모습은 보좌진을 그림자로 여기기보다 동료로 인식하고 있었다.

갑자기 의원 ‘조··훈’이 궁금해졌다. 그들의 ‘미소’를 담고 싶고,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 해가 밝자마자 의원실에 전화해 인터뷰를 요청했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수락의 답이 왔다.

지난 19일, 의원회관 544호 조정훈 의원실을 찾았다. 의원실에 들어서자 느껴지는 공기가 남달랐다. 보좌진들은 조 의원을 ‘정훈님’이라 칭하며 서슴없이 농담을 주고받는다. 보좌진끼리의 대화에서도 서로를 ‘OO님’이라 불렀다. 보좌진 간 ‘급’을 나눈 서열은 보이지 않았다. 조 의원이 외치던 ‘상호수평적 관계, 입법노동자 파트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인터뷰 준비를 마치고 조 의원과 인사를 나누며 으레 ‘의원님’이라 시작하자, 조 의원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꼭 ‘정훈님’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이후 조 의원은 인터뷰 내내 ‘수평적 소통과 약속, 신뢰’를 강조했다.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부르는 이유는 누구든 수평적 소통을 하고 싶다는 뜻이에요. 정치의 본질은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말을 뱉었을 때, 끝까지 노력하고 그래도 못 했다면 솔직하게 설명하고 용서를 구하는 거죠. 그것이 신뢰라고 생각해요”

조 의원은 시종일관 언행일치를 보여주려는 듯 위계질서보다 수평적인 모습으로 성심성의껏 질문에 답했다. 무엇을 묻든 그는 진솔했고, 어떤 질문이든 성실하게 응했다. 

다음은 ‘정훈님’과 일문일답.


-국회에 입성한지 3주가 지났다. 처음과 무엇이 달라졌나?

▶수원 아주대에 사무실이 있어서 국회 들어오기 전에는 서울에 사무실이 없었어요. 국회에 사무실에 생긴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출퇴근용 차를 한대 마련하긴 했는데 이번 주에도 세 번 버스 타고 택시 타고 별로 달라진 건 없습니다.   

-첫 기자회견이 상당히 신선했다. 아니 감동적이었다. 어떤 생각으로 기자회견을 준비했나?

▶백만 명 넘게 그 영상을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SNS에서 받아본 반응 중에 가장 뜨거웠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것을 제가 기획했다고 하면 청와대에 계신 모 분보다 제가 더 뛰어난 기획자일 거예요. 이렇게 뜻하지 않는 데서 국민들이 반응을 보여주셔서 제가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일단 감사한 건 보좌진들을 소개하는 것에 국민 여러분들께서 좋게 봐주시고 손뼉쳐주셨다는 것이 굉장히 기뻤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당연한 일인데 당연한 것을 해도 칭찬을 받는구나. 국회가 그 동안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제게 ‘현타’(현실 자각 시간)가 왔어요. “아! 별거 아니구나, 여의도를 넘어서 우리 국민들이 사는 그 수준만큼만 국회가 움직여도 박수 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배움이 있었고, 또한 저희 보좌진분들이 이렇게 ‘업’ 되셨어요. 

어제도 저의 1호 법안 발의하러 외부에서 손님들이 오셨는데 보좌진들 보면서 “인터뷰에서 많이 봐서 익숙한 사람들 같아요” 이런 말을 듣는게 아주 좋았어요. 

-기자회견을 보면서 배려와 존중, 믿음이 느껴졌다.

▶‘아휴! 부끄럽습니다’ 저도 생활인이었고 누구로부터 월급을 받아 생활을 십몇 년 했어요.  월급 받는 사람의 입장을 잘 알죠. 또 간부가 되어서 사람들을 고용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사람이란게 물질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물이 없는 뭔가가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돈을 줘도 툭 던지면 기분 나쁜 느낌… 누구나 한 번쯤 있잖아요. 저는 그런 데에 좀 민감해요. 그래서 "제가 뛰어나서 잘 되는 게 아니라, 훌륭한 친구가 곁에 있으면 더불어 잘 되듯이 저보다 더 훌륭한 보좌진이 있으면 저도 덩달아 묻어가잖아요" 

<정훈님, 일곱 자로 눌러 담기>

-내게 보좌진이란?

▶입법노동자 동지/ 제게 보좌진이란 ‘입법노동자 동지’. 저는 저 자신을 입법노동자라고 생각해요. 국회의원이 돼서 신분이 막 하늘로 치솟는 그런 경험을 아직 못했지만 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저는 입법노동자로서 노동자는 누구로부터 무언가를 부탁받은 사람이잖아요. 그게 당연히 국민이고 제가 해야 할 노동은 국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죠. 하지만 혼자 못해요. 제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그것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입법노동자 동지입니다.

-국회의원 도전 왜?

▶부엌을 만들려고/ 부엌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제가 2016년 한국에 돌어오기 전에 세계은행에서 한 15년 근무했는데 제 마지막 직장이 우즈베키스탄이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사무소 대표로 2년 반 정도 일했어요.

제가 임기를 끝내고 한국에 간다고 하니까 현재 직원들의 환송회를 해줬어요. 그 자리에서 인생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고했다고 한마디씩 덕담을 하잖아요. ‘우리나라에 1조 원이나 되는 큰 차관을 끌어오는 데 도움을 줘서 고맙다’ 뭐 이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이구동성으로 ‘부엌’을 이야기해요. 부엌이 무엇이냐 하면 저희 사무실 직원이 한 60명 정도 됐었는데,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락을 가져왔지만 먹을 공간이 없었어요. 사무실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책을 별로 안 보더라고요, 그래서 도서관을 없애고 제 운영비를 탈탈 털어서 도서관을 멋진 부엌으로 만들었어요. 

‘오픈키친’이죠.  거기서 직원들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그랬는데, 제 2년 반 대표로서 임기 중에 가장 잘한 게 그거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어요. “아, 정치가 부엌이구나” ‘나라 좋게 만들겠다’ 그런 거창한 얘기보다 지도자, 정치인에게 바라는 것은 내 삶을 구체적으로 조금이라도 낫게,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 바로 그겁니다. 정치라는 것은 결국 부엌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명분이고 이념이고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낫게 만드느냐, 전 ‘국민이 원하는 부엌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십년 후 나의 모습?

▶믿을만한 정훈님/ ‘정훈님’은 이런 수평적 소통하고 싶다는 뜻이었고요. ‘믿을 만하다’는 것은 신뢰라는 뜻이잖아요. 정치의 본질은 전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말을 뱉고 어떤 말은 끝까지 지켜내고… 모든 걸 이루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못할 수도 있죠. 그런데 만약 못하면 왜 못했는지 국민들한테 솔직히 설명하고, 용서받고… 저는 그런 이미지를 갖고 싶어요. ‘조정훈은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자기가 말한 것은 지키려고 꽤 노력하는 친구구나’ 능력 있는 사람은 많으니까 저는 제가 말한 것을 끝까지 한번 지켜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정훈님 언제 좋아? (최병현 보좌관 답변)

▶열심히 일하실 때/ 정훈님은 평소에 보면 동네 형님 같고 굉장히 편하게 해주세요. 잘 아시겠지만, 상호수평적 관계를 추구하시고 배려도 많이 해주셔서 오히려 그 점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일하실 때는 남자가 봐도 매력이 넘쳐요. 얼마 전 외국 정치인들과 온라인으로 비대면 회의를 했었어요. 그때 테이블에 앉았는데 눈빛이 변하더라고요. 테이블 위에서는 호랑이, 사자 같은 표정으로 변하세요. 그리고 회의가 끝나니 다시 동네 형님으로 돌아오시더라고요. 그 반전 매력이 정말 섹시할 때가 있어요.


<정훈님의 미소를 보다>

1.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을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을 때. 아마 정치를 하는 이유, 학생들을 가르쳤던 이유, 세계은행에서 일했던 이유는 제가 누군가의 삶에 손을 얹었을 때, 지금보다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을 보면서 행복했어요.

최근 기자회견 후 어떤 분이 저희 사무실에 전화를 했어요. 우연히 기자회견을 봤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국회사무처에 알아보고 전화를 했다고. 그 한 분에게는 국회의원으로서 도움이 됐구나.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기쁨을 드렸구나.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됐을 때, 가장 기쁘고 저를 웃게 합니다.

2. 국민의 대표로서 어떻게 국민들을 ‘미소’ 짓게 하겠는가? 

▶‘정치가 그리고 국가가 나를 보호해 주는구나’라는 느낌을 드리고 싶어요. 

기존의 우리 복지는 잘 생각해보면 나의 비참함을 드러내야 해요. 나는 가난합니다. 그래야 돈을 주고, 나는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래야 돈을 줍니다. 나는 고아입니다. 그러면 고아수당 줘요. 국가가 국민의 비참함을 증명해야 돈을 주는 제도여요. 국가가 수탈국가였기 때문에 그래요. 저희는 수탈국가에서 ‘국가는 보호하는 목적으로 존재하는 겁니다’라는 사례들을 만들고 싶어요. 정치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고요.

저 자신과 보좌진이 매일 나누는 이야기가 있어요. ‘국가는 국민들을 보호하는 존재’라는 정책과 법을 계속해서 만들자. 그래서 자기 돈으로, 자기 능력으로, 자기 스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되구요… 사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잖아요. 국가는 내가 울고 어려워야 조금씩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국가는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는 존재구나” 이런 느낌이 드는 국가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조정훈 의원 약력
1972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국제개발정책학 석사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 사무소 대표
여시재 부원장
아주대학교 통일연구소 소장/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제21대 국회의원(시대전환)

<美소>는 '각박한 현실 속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웃으며 살아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한 코너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따뜻한 미소와 사람 냄새 풍기는 정치인'의 꾸밈없는 삶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tina@kukinews.com / 영상제작=우동열 쿠키건강TV PD, 사진=박태현 기자

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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