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맨홀에 작업하러 들어간 노동자들이 유독가스 등에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27일 대구 달서구의 한 자원재활용업체 맨홀에서 청소 작업을 하던 노동자 4명이 쓰러졌다. 이 중 2명은 심정지 상태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나머지 2명은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먼저 들어가 청소작업을 하던 노동자 1명이 쓰러지자 인근에 있던 다른 노동자 3명이 구조를 하러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맨홀의 잔류 가스를 측정한 결과, 황화수소와 이산화질소, 포스핀 등이 기준치의 14배 이상을 초과했다. 노동자들은 방독면 등 안전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7일에도 서울 강남구의 한 공사 현장 맨홀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1명이 유독가스를 마시고 추락했다. 현장에 있던 포클레인 기사가 구조를 위해 맨홀 아래로 뒤따랐다. 소방당국은 두 사람을 3시간 만에 구조,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모두 숨졌다.
이들은 서울 강남구청과 계약을 맺은 건설업체 소속으로 여름철 집중호우를 대비해 빗물받이 신설 및 개량 공사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강남구청은 “이산화탄소 중독과 안전장비 착용 여부 등 경찰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에도 부산 하수관로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3명이 맨홀 안에서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노동자 1명이 맨홀 내부에서 산소절단기를 이용해 작업을 벌이던 중 폭발음과 함께 쓰러졌다. 이후 확인을 위해 뒤따라 들어간 노동자 2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경찰은 노동자들이 산소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고 하수관로에 환기 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등 현장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정황을 포착, 현장 관계자 5명을 입건했다.
맨홀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할 시 지켜야 할 안전수칙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밀폐공간에서 작업하도록 하는 경우,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해 적정공기가 유지되고 있는지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 구명밧줄과 공기호흡기 또는 송기마스크 등의 장비를 착용하도록 지시해야 한다. 노동자에 대한 교육도 필수다.
사망사고 방지를 위한 법안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따르면 안전·보건 조치를 미이행해 노동자의 사망사고 등을 야기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안전 장비도 지원된다. 안전보건공단에서도 질식중독사고 위험이 높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환기팬과 가스농도측정기, 송기마스크 등의 장비를 무상으로 대여하고 있다.
그러나 맨홀과 같은 밀폐 공간에서 질식 재해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질식 재해는 95건 발생, 150명이 사상했다. 사망자는 76명(51%)에 달한다. 다른 일반 사고성 재해(1.2%)의 40배 수준이다.
전문가는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 현장의 인식 제고와 정부의 강력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봤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은 “법과 제도가 있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작업 전 밀폐공간을 확인하고 산소공급 측정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역할을 맡은 현장 사업주의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에서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정부·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도 필요하다. 현재는 사업주에게 모든 관리 책임을 맡겨 놓은 형태”라며 “사업주의 자체적인 사전점검이나 예방 조치가 미흡할 경우, 사업 발주를 주지 않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도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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