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협약식을 앞두고 불발됐다. 김명환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은 노사정 합의안 서명에 긍정했으나 일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크게 반발하며 협약식 참석 자체가 무산됐다.
국무총리실은 1일 오전 10시15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식’이 민주노총 불참으로 취소됐다고 밝혔다. 협약식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그러나 김명환 위원장의 참석이 불발되며 협약은 이뤄지지 못했다.
같은 시간,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교육장에서는 이날 오전 9시부터 민주노총 제11차 중앙집행위원회(중집) 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김명환 위원장은 민주노총 산별노조·지역본부 대표 등이 참여하는 중집 회의를 통해 노사정 대타협 서명을 위한 의견 수렴을 진행할 방침이었다. 김명환 위원장은 전날 10차 중집 회의에서 노사정 합의안이 추인되지 못하자 “재난 기간 비정규 취약 노동자 보호,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 상병수당, 임금양보론 차단 등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취지에 맞게 주요 내용이 만들어졌다”며 “이를 살려가야 한다는 것이 내 판단이고 소신”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중집 회의는 이날 오전 개회되지 못했다. 다수의 민주노총 조합원이 참관인 자격으로 중집 회의에 참석해 김명환 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내놨다. 김명환 위원장은 회의 진행을 위해 참관인의 퇴장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장 내부에서는 “혼자 결정하려면 무엇 하러 중집을 소집했느냐” “위원장의 독단적인 결정을 규탄한다. 믿을 수 없다” “내용을 알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나가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냐” 등의 날 선 목소리가 쏟아졌다.
조합원들은 교육장 밖 복도에도 자리했다. 김명환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이자 조합원들은 “막아야 한다”며 문 앞에 결집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극심한 반발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사정 대타협 최종 합의안에는 전 국민 고용 보험 도입 등 사회안전망 확충, 기업살리기 및 산업생태계 보전, 고용유지를 위한 정부 역할 및 노사 협력, 상병수단 도입을 위한 사회적 대화 지속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 일부 조합원들은 명확한 내용이 빠진 ‘추상적’인 합의안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기간 해고 금지와 같은 기존 노동계의 요구가 수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영계가 노동시간 단축과 휴업·휴직 등 고용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경우 노동계는 이에 협력한 부분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리해고의 합리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정부 입법 추진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일부 특수고용노동자가 배제될 수 있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등은 이날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노사정 대타협 합의안을 비판했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박한 현실을 풀기 위한 내용은 단 하나도 없었다”며 “기업 마음대로 구조조정을 하고 휴업급여를 줄일 수 있는 안이 포함됐다.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안”이라고 질타했다.
이번 노사정 대타협이 지난 1998년 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IMF) 당시 노사정 대타협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소연 비정규직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은 “IMF 당시 노사정 대타협으로 노동계는 파견법을 받아들였다. 당시 정부와 노조 지도부 모두 이 법으로 인해 노동자가 고통 받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며 “현재 70% 이상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부동의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타협의 결과가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노동자를 파견·하청·중소영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했다”고 주장했다.
김수억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공동소집권자도 “IMF 당시 노사정 대타협은 정리해고제였다. 수백만이 해고됐고 1100만명의 비정규직이 양산됐다”면서 “이번 노사정 대타협에서도 해고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사회적 합의 외에는 없다. 고용유지를 전제로 40조원을 기업에게 준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고용 의무는 담기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다만 노동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한국노총은 같은 날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한국노총은 “정부와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가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소모의 시간으로 끝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며 “잠정 합의된 내용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충실히 논의되고 이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경총, 대한상공회의소,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타개를 위한 노사정 대화를 진행해왔다. 이는 민주노총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노사정은 최근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내부 반발이 거세지며 합의문 발표는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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