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치료비 하나는 걱정 없다. 완치까지 소요되는 비용은 모두 국가가 책임진다. 진료비 중 건강보험 급여 항목이나 의료급여 부담금은 건강보험공단에서 낸다. 검사비용, 입원치료 시 식비 등 비급여 항목은 정부와 시·도 보건소에서 부담한다. 환자는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치료에만 집중하면 된다.
건강뿐 아니라 마음 회복에도 국가가 적극 나선다.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심리적 방역을 강조하며 코로나19통합심리지원단을 조직했다. 지원단은 일반 국민, 확진자, 격리자 등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타격을 예방·치유했다.
믿음직한 제도와 당국자들의 행보는 바이러스를 빠르게 제압했다. 국민들은 병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받는다. 약간의 몸살증상에도 누구나 쉽게 선별진료소를 찾았다. 이제는 “확진자가 더 조심하지 않아서 병에 걸렸다”, “확진자 때문에 애먼 상점들이 피해를 본다”는 말을 여러사람 앞에서 당당히 내뱉는 사람은 드물다.
이 기세라면 앞으로 어떤 바이러스가 등장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힘겹겠지만, 정부·의료진·국민은 협력해 바이러스를 몰아낼 것이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는 예외다.
이 바이러스를 맞닥뜨리면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믿음직한 제도와 든든한 당국자는 없다. 확진부터 완치까지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발생한다. 완치에 실패하거나,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쏟아지는 시선과 막말 때문에 사회 복귀도 순조롭지 못하다.
성범죄 고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외국인 친구가 있다. 한국에서 1차 촬영을 마친 그는 성범죄를 바이러스에 빗댔다. 어느 누구의 제압도 받지 않고 사회에 만연하게 된 바이러스라는 것이다. 얼기설기한 성폭력 처벌법은 손정호같은 법꾸라지를 양산한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피해 상황을 상기시키며 2차 가해를 범하기도 한다. 피해자는 법률대리인과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가며 정신적·금전적 비용을 소모한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밝히기까지 지난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
심리적 방역에 대한 기대는 언감생심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하면 ‘미투가 사람 잡네’ 타령이 어김없이 시작된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피해자가 부주의했다”거나 “왜 당하고만 있었느냐”는 망언을 하는 사람들을 아직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성범죄가 코로나19처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의 생존을 위협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코로나19 창궐 7개월 만에 쟁쟁한 백신·치료제 후보물질이 여럿 나왔다. 성범죄를 몰아낼 백신, 피해자를 도울 치료제는 없다. 성범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확실히 7개월보다는 오랫동안 사회에 붙어있었다. 언제까지 성범죄를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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