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당시 여성 비서가 성차별적인 업무에 시달렸으며 성희롱·성추행 등이 발생하기 쉬운 업무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그간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서울시에서 일어난 사건의 성격과 문제에 대해 다시 짚겠다”며 여성비서가 행해야 했던 성차별적 업무에 대해 밝혔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여성 비서는 ‘시장이 마라톤을 하는데 여성 비서가 오면 기록이 더 잘 나온다’는 윗선의 주장에 따라 주말 새벽에 나오도록 요구받았다. 또한 직원들이 시장으로부터 결재를 받기 전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역할을 여성 비서에게 암묵적·명시적으로 요구했다. 이른바 ‘기쁨조’와 같은 역할을 사전에 요청했다는 주장이다.
시장실과 비서실이 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업무 환경이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성 비서는 시장이 운동을 마친 후 시장실에서 샤워할 때 옷장에 있는 속옷을 근처에 가져다줘야 했다. 시장이 벗어둔 운동복과 속옷을 봉투에 담아 집에 보내는 것도 여성 비서의 역할이었다. 시장의 낮잠을 깨우는 일도 “여자가 깨워야 기분 나빠하지 않으신다”며 여성 비서에게 맡겨졌다. 시장의 건강 체크를 위한 혈압 측정도 의료진이 아닌 여성 비서에게 할당됐다. 고 박 시장은 피해자 A씨에게 “자기(피해자를 지칭)가 재면 내가 혈압이 높게 나와서 기록에 안 좋아”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소 사실이 전해진 후, 서울시 전·현직 고위공무원 등이 피해자 A씨를 만류하거나 압박한 정황도 전해졌다. 단체에 따르면 “너를 지지한다면서 정치적 진영론에,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고 ‘조언’”, “힘들었겠다고 위로하며 기자회견은 아닌 것 같다고 만류”, “‘그런데 OOO은 좀 이상하지 않냐’며 특정인을 지목하는 일방적 의견 제시”, “문제는 잘 밝혀져야 한다면서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며 피해자를 압박”했다.
이들 단체는 경찰의 지속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와 더불어민주당 등에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호칭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두 단체가 입장발표를 통해 요구한 제안사항을 대폭 수용해 조사단 구성에 임하겠다”며 “조사단 구성을 위한 서울시의 제안에 조속히 응해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 8일 고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 박 시장은 지난 9일 오전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종적을 감췄다. 이후 지난 10일 오전 0시 서울 성북구 북악산 성곽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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