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악플 캡쳐, 어디로 갈까 [궁금해서]

내가 보낸 악플 캡쳐, 어디로 갈까 [궁금해서]

기사승인 2020-07-19 08:00:01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연예인을 향한 악성 게시물을 일부러 찾아보는 팬들이 있다. 좋아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악플 증거를 소속사에 보내 법적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연예인들이 받는 악플의 수위가 갈수록 심해지며 생긴 일이다.
악플러들이 점점 악랄하고 집요해지면서 법적 대응을 유난이라고 생각하던 시선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연예인들이 받는 정신적 피해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몇 가지 사건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예인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가운데 예전처럼 선처하지 않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선처는 없다”는 소속사의 공식 입장문을 보며 구체적인 악플 고소 과정이 궁금해졌다. 팬들이 보낸 악플 캡쳐, PDF 파일이 이 과정에서 실제 사용되는지도 궁금했다. 악플 대응에 관해 묻자 관계자들은 매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무기명으로만 답변할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악플 언급으로 또다시 악플에 얽힐 것을 우려했다. 그만큼 악플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는 것이다.

■ 발단 : 연예인, 언제 악플 고소를 결심할까
연예인 악플 고소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온라인 상에서 한두 번 욕먹었다고 법적 대응을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많은 연예인과 소속사는 악플 고소로 인해 부정적인 화제가 더 부각될까 우려한다. 고소를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다.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은 “악플러를 고소하겠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는다고, 회사가 온라인 악성 댓글 관리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팬들이 보내오는 악플 관련 제보를 수집하는 한편 자체적으로 꾸준히 모니터링을 실시한다”라고 말했다. 모두 다 지켜는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플을 지켜만 보던 기획사, 혹은 연예인이 고소를 결심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기준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관계자들의 이야기엔 공통점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도를 넘는 수위’와 ‘꾸준함’이다. 이로 인해 당사자가 고통을 호소하거나 이미지에 손상을 가한다고 판단하면 기획사는 법적인 대처를 고려한다. 관계자들이 털어놓는 심각한 악플의 수준은 상식선에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거나 조롱하는 것에서 벗어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내용도 있다.
연예 기획사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A씨는 “연예인이나 기획사에겐 고소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부분을 고려했을 때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악의적인 말들을 지능적이고 지속적으로 유포하는 경우가 많아 고소를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다.
악플에 적극적으로 대처해달라는 팬들의 강경한 목소리도 소속사를 움직이는 요인이다. A씨는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팬들의 제보를 확인하니 악플의 수위가 너무 심해 고소를 결정한 측면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악플의 방향이 가족이나 주변인에게까지 향하면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한다.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본인에 대한 악플은 감내하던 연예인도 가족과 주변인까지 시달리면 참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귀띔했다.
가요홍보 관계자인 C씨는 “악플 고소는 회사 차원에서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소속사가 가만히 있다고 해서 법적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연예인의 상황이나 이미지를 고려해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고 대응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 전개 : 내가 보낸 악플 캡쳐, 어디로 가는 걸까
‘고소각’이 섰다면 증거를 모아야 한다. 채증은 기획사 담당자나 법무팀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간 회사 차원에서 진행한 모니터링 결과물은 이때 쓰인다. 팬들이 소속사로 보낸 악플 제보도 큰 역할을 한다. A씨는 “회사도 꾸준히 악플 자료를 수집하지만, 팬들이 많은 양의 악플을 정리해서 보내주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고소 진행 건을 선별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팬들은 악플러나 악플의 동향을 섬세하고 꾸준하게 살펴보고 지속적으로 자료를 보낸다”면서 “팬들이 보낸 모든 제보를 고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법무팀이나 고문 변호사와 함께 내용을 확인하고 법적 대응이 가능한 것은 소송을 담당하는 법무법인 측에 넘긴다”라고 말했다.
다수의 관계자는 이 과정이 몹시 괴롭다고 토로했다. 악플 증거를 채집하고 고소를 위해 내용을 살펴보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호소다. A씨는 “악플 중 당사자가 보면 어떡하나 걱정될 정도로 악의적인 내용이 많다. 고소를 위해 자료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나 놀라울 정도”라고 분노했다. B씨 또한 “악플 자료수집에도 고충이 있다. 나쁜 내용만 모아서 봐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면서 “제3자도 이런 기분인데, 당사자의 고통은 오죽하겠나 싶어 마음이 좋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 절정 : 인생은 실전일까
본격적인 법적 대응은 전문가의 몫이다. 법무법인 리우의 정경석 변호사는 “최근 연예인을 향한 악성 댓글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악플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기획사 측이 과거에 비해 강경하게 대처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연예인을 향한 악성 댓글 중 고소가 가능한 항목엔 ▲일반적인 욕설이나 모욕적인 표현, ▲근거 없는 헛소문, ▲신체적인 특징이나 특정 발언에 관한 부정적인 내용 등이 있다. 이 같은 내용이 들어가면 형사 범죄에 해당해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등이 성립된다.
정 변호사가 설명한 대략적인 고소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피해자의 처벌 의사를 확인한 후 채증에 나선다. 악의적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수집하고 작성자의 계정이나 기타 정보를 파악해 수사기관에 제출한다. 이 과정에서 팬들이 보낸 자료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후엔 수사기관에서 해당 계정의 신원을 파악해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혐의가 인정되면 기소하고,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다.
법정에 선 악플러들은 모욕죄, 정보통신망법위반 등으로 처벌받는다. 벌금형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같은 범죄로 처벌받았던 경험이 있는 악플러는 더 무거운 책임을 질 가능성이 크다. 정 변호사는 “동일 범죄가 누적돼 더는 벌금형으로 교화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재판부가 징역형도 선고할 수 있다”라고 봤다.
악플을 올렸다가 피소된 일부 사람들의 후기처럼, 조사 과정에서 본인이 작성했던 글을 직접 읽는 경우도 있을까. 이에 관해 정 변호사는 “수사 중 문제의 댓글을 본인이 작성했는지 확인하고, 댓글에 대한 작성자의 의견이나 의사를 묻는 과정에서 그렇게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 결말 : 연예인도 사람이에요
과정은 쉽지 않지만, 분명 효과는 있다. ‘강경 대응’을 경험한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관계자들은 악플러가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다른 악성 댓글 작성자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A씨는 “악플이 너무 심하면 고소를 하는 게 낫다고 본다. 고소를 진행하면 악플이 일시적으로 수그러들기도 한다”면서 “지능적인 악플러들이 법망을 피해 꾸준히 활동하는 만큼, 회사도 꾸준히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악플 피해를 막기 위해 선제적인 움직임에 나서는 경우도 생겼다. 법무법인 리우는 지난 4월부터 클린 인터넷 센터를 운영 중이다.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발견한 악플에 우선 삭제 권고를 한 후, 정도가 심하거나 반복되면 법적인 대응을 진행한다. 정 변호사는 “악플을 법적으로 대처하기 이전에 교육 등을 통해 악플러들의 인식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예계 생활을 10년 이상 이어온 연예인 D씨는 “악플에 관해 할 말이 많다”며 “익명으로 근거 없이 타인을 비방하는 글을 쓰는 악플러의 의도가 궁금하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나 또한 활동 초기부터 수많은 악플을 접했다”며 “잘 넘기는 연예인도 있지만, 일부는 정말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연예인도 사람이다. 나름의 고충도 있다”며 “이런 부분을 보듬어,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었으면 한다”라고 당부했다.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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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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