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정신과 입원환자로부터 받는 협박에 경찰의 도움을 받는 의사를 본 적은 없다." 한 정신과 의사의 말이다. 정신과 의료진이 환자에 위협받아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의미다.
부산에서 발생한 '제2의 임세원 사건'으로 정신의료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6일 의료계에서는 늘 우려해왔던 일이 결국 현실화됐다는 성토가 터져 나왔다.
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의 죽음을 계기로 마련했던 '임세원법'이나 100병상 이상 의료기관에 보안요원과 비상벨 등을 설치하도록 한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방안’도 동네 정신과 진료실의 참변을 막기엔 부족했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부산 북구의 한 정신과의원에 자의입원한 정신과 환자인 B씨는 퇴원 문제로 의사에게 불만을 품고 흉기를 휘둘렀다. 평소 병원 내부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의료진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퇴원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병원은 숨진 정신과 의사 1명이 상주하는 소규모 병원이었다.
정찬영 새미래병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은 자신의 SNS에 “(부산의 의사 피살 사건)이런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다”며 “고성을 지르거나 주사를 부리며, 병원 로비에서 업무 방해를 해서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은)어쩔 줄 몰라 했던 일, 퇴원 직후 연쇄 살인을 벌이려다 붙잡힌 환자 등 도심에서 자의입원 중심으로 입원실을 운영하는 정신의료기관의 단면”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진료를 시작했더라도 감당하기 벅찬 환자는 안심하고 의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있어야 하고, 경찰을 비롯한 당국의 상시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려운 환자를 믿고 의뢰할 만한 의료기관도, 연계가 원활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기관간 연계 지원시스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과 환자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할 시스템이 태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의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A씨와 같은 스스로 입원을 요청한 ‘자의입원’ 환자의 경우 의료진의 통제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신의료계 인사는 “자의입원 환자에 대해서는 병원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자의입원 환자 중에는 증상이 나빠져 집중치료와 통제가 필요한 환자도 있다. 그러나 자타해 위협이 있더라도 환자가 퇴원한다고 말하는 즉시 퇴원을 시켜야한다”며 “법적으로 자의입원 환자는 보호입원이나 동의입원으로 변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례로 병동에서 난동을 피우고 치료진을 때리는 위험상태의 자의입원 환자가 외박하겠다거나 퇴원하겠다고 말하면 의료진이 막을 수가 없다. 강제로 못 나가게 막으면 불법감금이 되어버린다. 경찰이나 지자체의 도움을 받거나 타병원에 이송하는 것도 매우 까다롭다”며 “피해나 고통을 온전히 의료진들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동네 정신과의원의 의료진들을 보호할 추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홍나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이사(한림대성심병원)는 "임세원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작은 개인의원들은 법안의 테두리에서 제외돼 사각지대가 생겼다. 현실적으로 의원급 정신의료기관의 의료진을 어떻게 보호하고 도움을 줄 것인지, 그러면서 환자분들이 안전하게 치료를 받는 환경을 만들 것인지 대책을 고심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편, 임세원 교수 사망 이후에도 여전히 의료진을 향한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24일에는 을지병원에서는 장애진단과 관련 소송에서 패소해 앙심을 품은 환자가 의료진들에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있었다. 수부외과 의사인 담당 의사는 왼쪽 엄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상해를 입었고 석고기사는 팔뚝 부위를 다쳤다.
또 지난해 12월 16일 순천향대천안벼원에서는 사망한 환자의 유족이 병원 진료실에 난입해 문을 잠그고 의사에게 모니터를 던지는 등 무차별 폭행을 저질러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romeok@kukinews.com
Copyright © KUKI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