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출근은 계속된다

그래도 출근은 계속된다

기사승인 2020-08-24 06:10:02

사진=지하철 혼잡시간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행된 지난 5월13일 오전 서울 여의도역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 ‘받은글) -00기업, 28일까지 재택 -△△기업, 3교대 재택…’

서울 강북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최모(32)씨는 SNS상에서 도는 ‘재택근무 현황’ 글을 볼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지난 주말 재택 근무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헛된 기대였습니다. 어렵사리 재택근무 이야기를 꺼내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습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죠. 최씨는 “아침마다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넘는 거리를 출퇴근한다”면서 “위험수당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대유행 위기가 턱밑까지 다가왔습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습니다.

유흥주점, 노래연습장, 대형학원, 뷔페식당 등 고위험시설 12종은 운영이 중단됐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극장 등 실내 국공립 다중이용시설도 문을 닫았습니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죠. 교육부는 수도권 학교에 대해 내달 11일까지 강화된 밀집도 최소화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사진=지난 5월29일 오전 서울 칠패로 서소문역사공원에 설치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인근 직장인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 박태현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외출 자제는 일부 직장인들에게 ‘사치’입니다. 기업이나 직군에 따른 재택 근무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이버는 지난 6일 직원들에게 장마로 출퇴근길 안전이 우려된다며 원격근무를 권장해 뭇 직장인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지난 2월26일부터 시작된 재택근무를 종료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도 말이죠.

지난달 27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5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본인 업무가 재택근무가 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3.5%였습니다. 이들 중 실제 재택 근무 경험자는 64.7%, 미경험자는 35.3%로 집계됐습니다. 3명 중 1명은 재택근무가 가능한데도 실제 재택근무를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기업 규모별로도 차이가 났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국내 기업 300여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를 시행한 곳은 대기업 45.8%, 중견기업 30.6%, 중소기업 21.8%로 나타났습니다.

이렇다보니 재택 근무 대상에서 제외된 직장인 사이에서는 “출근은 왜 규제 대상이 아니냐”는 하소연이 나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사무실(실내)에서 여러 명이 밀집해 근무한 뒤 식사를 같이하는데 ‘방역 위험지대’가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직장내 감염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0일 12시 기준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발 연쇄감염자 67명 가운데 23명이 직장에서 나왔습니다. 종교시설(33명) 다음으로 많은 숫자입니다.

사진=서울 올림픽로 잠실종합운동장 코로나19 차량이동 선별진료소 의료진/ 박태현 기자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에 지난 18일 글을 올린 한 직장인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재택근무를 해본 적이 없다. 실내 50인 이상 모임 금지인데 회사에서는 한 층에 100명씩 모여있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민간 기업은 왜 재택근무가 의무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래서 대기업 공기업 하는 것 같다”고 푸념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는 ‘좀비도 한국인들의 출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글이 공감을 얻었습니다. 네티즌들은 “태풍에 나무가 날아가도 출근했다. 한국인은 정말 무서운 것 같다” “좀비가 창궐하면 좀비 피해 다니는 시간까지 계산해 평소보다 3~4시간 일찍 집에서 나올 것 같다”고 자조했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방역수칙 단계별 조치를 살펴볼까요. 민간기관 및 기업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되어도 필수인원 외 전원 재택근무 ‘권고’ 입니다. 기업 재량에 맞기다 보니 “눈에 안 보이면 일 안 한다”고 생각하는 ‘윗선’의 사고방식이 재택근무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지모(28·여)씨는 “재택을 반대하는 상사를 보면 코로나19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건지 의심된다. 직원은 출근시켜 놓고 본인은 장시간 사무실을 비우는 모습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면서 “여건이 되는데도 ‘사무실 근무’에 목을 매는 회사는 유연성이 떨어지고 직원 안전은 뒷전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꼬집었습니다.

최혜인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한국 기업은 사무실에 오래 앉아있는 사람이 성실하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재택근무를 하면 일이 똑바로 안되고 회사가 제대로 안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한다”면서 “이런 기업 문화 때문에 OECD 국가 중 한국의 근로시간이 가장 길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노무사는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수도권의 경우 대중 교통을 이용해 밀집한 상태로 이동이 이뤄진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만으로는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극단적인 규제가 아니라도 정부가 자동차 5부제 혹은 시차 출퇴근 같은 구체적인 방향으로 방역 수칙을 제시한다면 기업들도 참고하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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