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안희정과 오거돈과 박원순 사건

[기획] 안희정과 오거돈과 박원순 사건

가해자·피해자 위계 관계, 피해자 생계와 일자리 위협

기사승인 2020-08-26 09:31:01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좌), 오거돈 전 부산시장(우)/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어떻게 몇 번이나 당하고 있어?”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직장으로 엮일 때, 피해자는 공격적인 질문을 받는다. 상사의 범행 이후에도 직장에서 제자리를 지킨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 진정한 피해자가 맞는지 검증하려 드는 2차 가해에 맞서야 한다. 이제껏 쌓아온 동료 관계와 자신의 이력이 무너질 위기도 감수해야 한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까지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불거졌다. 위력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무형적 힘이다. 이들 사건에서 가해자는 위력을 가진 직장 상사다. 피해자는 비서, 공무원 등 위력을 극복하기 어려운 부하직원이다.  한 조직에 소속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위계·위력 관계는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고발하기 위해 생계를 걸어야 한다. 가해자를 신고한 이후 직업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매일 같은 일터로 출근하는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이기 때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는 지난 2017년 2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안 전 지사의 선거캠프에서 근무했다. 그는 5개월 뒤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로 근무지를 옮겼다. 피해자는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발한 경험을 회고한 저서를 통해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자’의 범행을 신고하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동료의 평판이 절대적인 조직사회에서 권력자인 상사의 눈 밖에 나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피해자는 월급으로 학자금을 갚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직장을 뛰쳐나올 수 없다. 상사의 범행을 멈추기 위해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적다. 

피해자는 업무상 이해관계와 피해 사실 고발을 별개의 사안으로 구분 짓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 한다. 피해자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여론에 의해 2차 가해가 발생한다.

지난 4월23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20대 여성 공무원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정하며 사퇴했다. 이후 오 전 시장의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는 정치적 저의를 품고 ‘미투’(Me Too)에 나섰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피해자의 고발과 오 전 시장의 사퇴 시기가 4·15 총선과 겹쳤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자는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결백을 호소했다. 그는 자신의 고발과 총선 시기를 연관 지어 성범죄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 피해자는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피해 사실을 밝히기로 결정하기까지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을 한 적도 없다”며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거듭 강조해야 했다.

피해자를 위한 조직 내 성범죄 예방책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실정이다. 사건의 재발을 방지할 대책과 피해자 보호 수단도 미비하다. 피해자의 회복과 일상 복귀를 지원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요원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가해 사실에 대한 고발이 나온 이후, 여성가족부는 서울시의 성범죄 방지조치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점검 결과 서울시의 성범죄 예방 교육은 직급 구분 없이 전 직원 대상 집합교육으로 실시됐다. 위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동일한 교육을 받은 것이다. 고충처리 시스템은 피해자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피해자에 대한 조직 내 2차 가해, 인사상 불이익 등을 방지하기 위한 규칙도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동료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피해자를 위축시킨다. 피해자는 동료들이 위력을 가진 상사인 가해자를 등지고 자신을 지지해줄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업무상 긴밀히 협력했던 사람들이 피해자의 고발 이후 피해자를 외면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혐의 4차 공판에 참석한 그의 측근 A씨는 ‘안 전 지사의 선거 캠프 분위기가 강압적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피해자가 사적인 자리에서 안 전 지사를 격의 없이 대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A씨는 안 전 지사 관련 인터넷 기사에 피해자를 비방하는 댓글을 30여개 남겨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A씨는 피해자와 함께 안 전 지사의 선거 캠프 홍보기획팀에서 근무한 동료였다. 충남도청에서도 피해자가 수행비서였을 당시 A씨는 정무비서로 함께 일했다.

김주명 전 서울시 비서실장, 오성규 전 서울시 비서실장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방조한 혐의에 대해 피고발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피해자로부터 피해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지난 2017년부터 비서실에 20차례 이상 피해를 호소하며 인사이동을 요청한 텔레그램 대화 화면을 공개했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를 지난 2017년 8월~2018년 2월까지 10차례 강제추행한 혐의로 2018년 4월 기소됐다. 그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2월 법정구속됐다.

오 전 시장은 지난 3월 부산시청 내 시장 집무실에서 부하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이달 25일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달 8일 경찰에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혐의를 고발하는 고소장이 접수됐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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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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