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 집단의 불합리하고 불투명한 행태는 개선돼야 한다"며 전임 김상조 위원장의 재벌개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히며 한말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기업들을 상대로 무리하게 조사를 밀어붙였다가 전원회의에서 결론이 뒤집히거나 혐의를 입증 못 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경제검찰의 칼날이 무뎌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엄정한 법집행에 여전히 안일한 태도로 '갑질' 기업보다 '을'들을 더욱 서럽게 만들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수년간 조사를 벌여온 한화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한화 계열사들이 지난 2015~2017년 한화S&C(현 한화시스템)에 부당 이익을 몰아줬다고 의심하고 조사를 진행했는데 정작 혐의 입증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이번 사건에 공들인 시간 만 무려 5년이다. 현장조사만 10차례 이뤄졌다. 그런데 혐의입증에는 실패했다. 아무 증거 없이 무리한 조사만 벌이면서 증거 하나 제대로 확보한 것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공정위가 5년간 '헛발질'만 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의 '헛발질'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공정위는 총수 일가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한 미래에셋대우 그룹에 과징금(43억9000만원)을 부과하면서도 정작 박현주 회장은 형사고발 하지 않았다. 전임 김상조 위원장(현 청와대정책실장)부터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는 '무관용 원칙' 기조를 세워온 공정위가 스스로 원칙을 깼다.
공정위는 박 회장의 일감 몰아주기 거래 지시 정황을 확보하지 못해 검찰 고발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공정위 법집행 신뢰를 의심하는 지적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공정위가 재벌개혁의 강성기조에서 유연한 태도로 선회했다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법집행의 엄격한 요건을 등한시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적어도 박 회장이 일감몰아주기를 지시한 문건이나 자료 등 직접 증거는 확보해야 했다는 것이다.
증거확보를 하지 못해 줄지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례도 있다. 지난 2018년 치킨프랜차이즈 업체인 비비큐(BBQ)의 '광고비 부당 전가'와 SK케미칼과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위법 광고' 등이다.
비비큐는 지난 2017년 6월 자사 치킨 브랜드 가격을 인상하는 과정에서 가맹점에 광고비를 부당 전가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3억원, 피해 가맹점주들에게 5억3200만원 지급 등 시정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공정위는 비비큐가 가격 인상에 따른 매출 감소를 막기 위한 정당한 광고였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SK케미칼과 애경에는 가습기 살균제 라벨에 유해물질 정보를 은폐·누락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지만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다. 더욱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공정위가 이들 업체에 대한 기록 관리를 소홀히 해 증거 인멸됐다"며 검찰에 고발,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공정위의 안일한 법 집행으로 '갑질' 기업보다 '을'을 더 서럽게 만든 사건도 있었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대리점에 유통기한이 다 돼가는 제품이나 주문하지 않은 제품을 강제로 점주들에게 밀어낸 남양유업에 과징금 124억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증거자료 부족 등 이유로 119억원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냈다.
공정위는 대법원판결 후 다시 증거확보에 나섰지만 이미 증거는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공정위가 공정경제를 해치는 남양유업에 완패한 사건으로 무능한 경제검찰의 민낯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의 무리한 수사는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가중하고 투자를 위축 시킬 수 있다"며 "무리한 수사를 제동할 수 있는 확고한 견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unsik8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