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환 기자 = 한국에서도 국내 일드(일본 드라마) 팬들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가 지난달 시즌2편이 방송됐습니다. 약 7년 만에 속편이 나왔지만 첫 회 시청률 22%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자와 나오키가 이처럼 일본인들에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버블경제 이후 침체된 일본 경제 상황도 반영됐지만 무엇 보다 한자와 나오키(사카이 마사토 役)라는 인물이 가진 캐릭터가 지닌 매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히 “당하면 되갚아준다. 배로 갚는다!(やられたらやり返す! 倍返しだ!)”라는 명대사는 그 해 일본 사회에서 유행이 됐을 정도였죠. 즉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는 상명하복과 주종관계가 강한 일본 기업 사회에 억눌린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고 보면 됩니다.
국내 금융권에서도 이 드라마는 인기를 끌었습니다. 실제 신한은행은 직원들에게 해당 드라마를 교육소재로 시청을 권고할 만큼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또한 한자와 나오키에서 묘사되는 은행 내 파벌 다툼 등은 국내에서도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끌었는지도 모릅니다.
한자와 나오키에서 등장하는 파벌싸움…국내 사례는
한자와 나오키에서 등장하는 내용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로 은행 내 파벌 싸움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구 산업중앙은행은 ‘버블 경제 붕괴’ 이후 부실채권을 감당하지 못하자 구 도쿄다이치은행과 합병을 결정하고 이후 메가뱅크로 불리는 ‘도쿄중앙은행’이 탄생됩니다.
하지만 합병 이후에도 구 산업중앙은행과 구 도쿄다이치은행 출신의 파벌 싸움은 끊이지 않게 되고, 오오와다 상무를 중심으로 한 산업중앙은행 출신들이 도쿄다이치은행 계파인 은행장을 사퇴시키기 위해 압박을 가하게 되고, 한자와 나오키는 이들의 계략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은행 내 알력다툼은 실제 일본 은행 내 계파 싸움을 모티브한 것입니다. 도쿄중앙은행의 모티브가 된 곳은 미즈호 은행입니다. 일본 내 메가뱅크로 불리는 미즈호은행은 제일권업은행(第一勧業銀行), 후지은행, 일본흥업은행 세 곳이 합병되면서 재탄생한 곳인데 이곳에서 구은행 출신의 계파 간 알력 다툼이 약 10년 간 지속됐습니다.
국내 은행도 계파 싸움으로 얼룩진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KEB하나은행은 양측의 임금체계 통합 과정을 놓고 노사간 충돌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또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합병의 결과물인 우리은행도 합병된지 20년이 지났지만 계파 갈등의 응어리가 봉합되지 않았다는 평도 있습니다.
KB금융지주도 지난 2014년 발생했던 ‘KB사태’로 계파 간 파벌싸움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전산시스템 교체를 놓고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파벌싸움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 결과 임 회장과 이 행장은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비 올 때 우산 뺏는 은행…리스크 관리 vs 냉혹한 금융사
‘한자와 나오키’에서 종종 등장하는 대사 중 하나가 ‘맑은 날 우산을 주고 비 올 때 우산을 뺏는다’입니다. 은행원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 밖에 없는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도 일부 은행에서는 고객의 동의 없이 대출융자를 회수하는 경우도 있으니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양건설산업 법정관리 사태죠. ‘파라곤’으로 잘 알려진 동양건설산업은 삼부토건과 함께 헌인마을 도시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충격으로 2011년 법정관리 위기에 빠졌습니다. 당시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은 자금압박을 받던 동양건설산업에 신규 지원(1200억원 규모)을 중단했고, 협상 과정에서 동양건설산업이 담보로 제시한 아파트 매출채권도 거부했습니다.
물론 당시 부동산PF발(發) 저축은행 충격도 있었고 동양건설산업이 제시한 담보(아파트 매출채권)도 리스크가 컸다고 판단했기에 은행 입장에서는 이해할 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건설업계에서는 “결국 비 올 때 우산을 뺏더라”는 말이 나왔죠.
대출을 빌미로 예·적금, 펀드, 보험 등 금융상품 가입 강요도 하기도 합니다. 지난 2018년 국정감사에서 IBK기업은행 등은 이른 바 ‘꺽기’(금융기관이 대출을 빌미로 중소기업에 금융상품 매수 요구) 의심거래가 많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등장합니다.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가 은행원이 된 가장 큰 이유도 중소기업(부품 하도업체)을 운영하는 자신의 아버지가 담보로 맡겨둔 융자를 받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죠. 즉 한자와 나오키는 이 같은 은행의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은행원이 되기로 결심했고, 스스로 “좀 더 높은 곳으로 갈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드라마에서 한자와 나오키가 기술력은 있으나 재정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에 융자를 망설이지 않은 것도 이러한 배경이 바탕이 된 것입니다.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