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에 행인 덮친 간판…초속 30m만 넘어도 ‘흉기’로

강풍에 행인 덮친 간판…초속 30m만 넘어도 ‘흉기’로

기사승인 2020-09-08 16:30:17

사진=지난 3일 부산 남구에서 60대 남성이 강풍에 날아간 간판에 이마를 맞아 119 구급대원에게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한반도에 태풍 3개가 연달아 지나가며 큰 피해를 남겼다. 강풍으로 인한 시설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7일 부산 남구에서는 60대 남성이 길을 걸어가던 중 날아온 간판에 머리를 부딪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같은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하이선으로 인한 사유시설 피해는 간판 등 기타 시설 파손 144건, 주택 침수·파손 110건, 어산 파손·침몰 76척, 양식장 피해 29곳, 차량 침수 3건 등으로 집계됐다.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지난 3일에는 전북 군산의 3층짜리 교회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첨탑이 붕괴하며 옆 건물 옥상 쪽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같은날 부산 사하구, 인천 남동구, 경남 통영시에서도 교회 첨탑이 강풍에 넘어져 주택가를 덮쳐 소방당국이 출동했다. 중대본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마이삭 영향으로 간판 138건이 날아갔고 주택 76채가 파손됐다.

강풍으로 인해 날아간 간판이 인명 피해를 초래한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해 제13호 태풍 ‘링링’이 지나갔을 당시에는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건물 외벽에 달린 현수막이 지나가던 행인 머리 위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지난 2013년에는 인천 지역에 돌풍을 동반한 집중 폭우로 서구 소재 횟집 외벽 간판이 인도로 떨어져 행인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교회 첨탑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교회 첨탑이 강풍에 무너져 50대 남성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 2012년에는 태풍 ‘볼라벤’으로 제주도에서 교회 첨탑이 붕괴해 인근 주민이 정전 피해를 입었다.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 때에는 경기도 안양시에서 첨탑 20여개가 무너져 내리는 일이 있었다.

시속 108km(초속 30m)가 넘으면 가로수가 쓰러지고 간판이나 표지판 등 도심 시설물은 ‘흉기’로 변할 수 있다. 전문가는 특히 옥외광고물 중 점포 위 또는 건물 모서리에 세로로 길게 매달아 튀어나오게 설치한 ‘돌출형 간판’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또 지구온난화로 인해 여름 태풍보다 강력한 가을 태풍이 앞으로 발생 빈도가 늘어나고 강도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사진=지난 3일 오전 4시쯤 전북 군산시 지곡동 3층짜리 교회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첨탑이 붕괴하며 옆 건물 옥상을 덮쳤다/ 연합뉴스 제공.
안전 대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 법이 개정된 이후 건물 4층 이상에 설치하거나, 한 번 크기가 10m 이상인 간판은 3년에 한 번씩 안전 점검을 받아야 한다. 또 시·도지사 등은 풍수해 등에 대비하기 위하여 매년 ‘옥외광고물 안전점검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옥외광고물 안전점검은 지자체가 건축사, 건축사 관련 단체 또는 비영리법인에 위탁하는 형태로 주로 이뤄진다. 안전 점검 결과 경미한 사항은 현장에서 즉시 개선 토록 하고 위험 요소가 발견되는 경우에는 행정 지도를 통해 관리하는 방식이다.

지자체 차원에서 안전 점검을 시행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부산의 한 옥외광고물 안전점검 단체 관계자는 “부산은 지역 특성상 바람이 강하고 구시가지가 많아 패널형 옥외광고물이 많아 바람에 취약하다”면서 “그런데 안전 점검에서 이상이 발견돼도 대부분의 광고주가 돈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보강 작업에 난색을 표한다. ‘당장 떨어질 것도 아니지 않냐’면서 방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주인 없는 ‘무연고 간판’의 경우 간판이 설치된 건물주가 관리해야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방치되기도 한다.

교회 첨탑의 경우 구조상 태풍이나 강풍에 취약하지만 ‘건축법’에 따라 신고해야 하는 공작물 대상에는 빠져 있다. 첨탑 신축시 구조안전에 대한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3년 주기로 진행되는 유지, 관리상태 점검도 자가 점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지난해 10월 2m가 넘는 관내 첨탑 1286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보수가 필요한 ‘주의’단계가 116개였고 철거 가능성이 있는 ‘위험’ 단계는 5개였다. 지난 4월 서울시는 시민 일상 속 안전과 직결되는 법령, 규칙 개선사안 111건을 발굴했으며 종교시설 첨탑을 ‘안전규정 미비 사례’에 포함했다. 서울시는 ‘건축법 시행령’ 상 신고 대상으로 첨탑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구조기술사의 구조안전확인서 제출을 의무화하도록 법령을 개정할 것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상태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건축법 시행령에 첨탑이 명시가 되면 좋겠지만 지자체 조례 상 첨탑을 옥상 광고물에 포함하는 방식으로도 첨탑에 대한 안전조치가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백 교수는 “옥외광고물의 경우 안전점검이 눈으로 큰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는 ‘육안 점검’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라며 “옥외간판 시공자 개업·창업을 면허가 있어야 가능하도록 하는 등 자격 조건을 강화해 처음 설치 때부터 제대로 간판을 설치하도록 하거나, 점검 과정에 구조물 전문가가 직접 참여해 단순 지도에만 그치지 않도록 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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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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