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눈물

[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눈물

이정화 (주부/작가)

기사승인 2020-09-14 13:02:54
▲이정화 작가
가족 문자 방에 딸이 음악 파일을 보냈다. 정말로 감동적이니 꼭 이어폰을 끼고 들어보라고 하였다. 얼른 두 번을 들어보았다. 파일엔 무슨 오케스트라 콘서트라고 쓰여 있었는데 멜로디도 따라 할 수 없는 음악에 외국어가 들려왔다. 일에 치여 죽을 만큼 피곤해했던 딸에게 감동을 줬다는 음악이 기특하지만 않았다면 두 번은커녕 중간에 멈춰버렸을 그것을 듣고 어떻게 답을 쓸지 잠시 생각했다. 다른 가족이 모두 잠잠하니 나까지 그럴 순 없어 딸에게 솔직히 써 보냈다. ‘고맙게 잘 들었지만 무슨 내용인진 몰라 왜 감동인지도 모르겠다’고.

딸은 내 말에 웃어대며 자기는 그냥 들어도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이 났다고 하였다. 그런 딸과 같이 공감하지 못하는 엄마 마음이란 영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그 영화 클립에서 열심히 소리치던 목소리도 벅찬 감정이었던 것 같았다. 뭔가 외로운 느낌의 곡이라, 막막한 작업을 계속 중인 딸도 그런가 싶었지만 어쨌든 딸이 눈물을 흘리고 그걸 우리에게 공유했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럴 수 있다는 건, 내 딸이 아직은 덜 지치고 여전히 건강한 상태라고 믿어져서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애들에게 ‘우동 한 그릇’이란 소설을 읽도록 권했었다. 어려운 형편에 서로 헤어져 살게 되어 가끔 우동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며 눈물의 재회를 하는 가족에게 식당주인이 우동 분량을 살짝 늘려주던 그 이야기는 한동안 수많은 독자를 울려 필독 도서목록에까지 들어있었다. 책을 읽으며 아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나는 토끼풀처럼 작고 어렸던 아이에게 그렇게 감동적이냐고 물었다. 눈이 붉어진 아이가 대답하였다. “엄마! 아무리 읽어도 어디가 슬픈지 모르겠어요. 엄만 슬퍼하셨는데 난 엄마가 왜 우셨는지 모르겠어요.” 

아이의 눈이 젖었는데도 난 그 말이 재미있어서 웃음부터 나왔다. 제 엄마가 웃으니 영문도 모르고, 다시 따라 웃는 아이를 볼 땐, 코끝이 시큰해졌다. 사랑하는 엄마가 슬퍼하는데 같이 슬퍼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린 아이 덕에 그 책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눈물이 많아진다고도 하는데, 나는 언젠가부터 눈물이 줄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아도 눈물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좀 쓸쓸해진다. 하지만 내가 그런 데에도 이유는 있다. 세월과 함께 감수성이 무뎌지기도 했겠지만 사실 그건 어느덧 영화나 드라마는 나에겐 실제의 인생보다 덜 슬프고 덜 감동적으로 느껴져서다. 무참히 돌아가는 세상과 그것에 태연한 사람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나 자신의 변변찮음과 그럼에도 묵묵히 견뎌야 하는 시간들에 문득 문득 눈을 적시다 보면 이제 내 눈물의 이유는 오로지 우리의 오늘에만 흐를 뿐, 가상의 것에 그만한 슬픔이나 감동은 없어서다.  

요즘은 뉴스와 방송 등을 통해 워낙 자극적인 것을 많이 보게 되니 더 무감해진다. 그러나 가끔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의 마음에 함께 울어주는 일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세상에 남겨놓은 유일한 것은 가끔 울었다는 것 뿐...’ 이미 제목조차 잊힌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가끔 나는 함께 웃듯 함께 울어주고 싶다. 질기게 내리던 비도 만 가지 이유를 갖고 내렸듯이 누군가에게서 흘러내리는 눈물에도 수만 가지 이유가 있을 테니.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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