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읽기] 북유럽 신화는 왜 대세가 됐을까

[게임읽기] 북유럽 신화는 왜 대세가 됐을까

기사승인 2020-09-23 05:48:01
'어쌔신 크리드 : 발할라'. 사진=유비소프트 제공


[쿠키뉴스] 강한결 기자 =기자는 신화(神話)를 매우 좋아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지간한 이야기는 모두 한 번 씩은 찾아서 읽어보는 편인데요. 위키 사이트에서 멍 때리며 한 두 시간 동안 신화를 주욱 찾아보기도 합니다.

신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흥미를 가졌던 시기는 2000년 초반 무렵이었던 같은데요. 당시 출판된 홍은영 작가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초등학생들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죠.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친구들과 대화가 안 될 정도였으니까요.

2000년도 중반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는 대중문화의 메인스트림으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계에서 이러한 흐름이 두드러졌죠. 2004년 개봉한 '트로이'는 제목 그대로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을 그린 작품인데요. '아킬레우스' 역을 맡은 브래드 피드와 '파리스'로 분한 올랜도 볼룸의 미친 비주얼이 아직도 회자되는 영화죠.

그리스 로마 신화는 게임산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신화 속 등장하는 영웅과 신들의 이름을 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있고요. 신화가 메인 스토리의 기반이 되는 게임도 여럿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괴물이 등장하는 '어쌔신 크리드 : 오디세이'. 사진=유비소프트 제공


유비소프트의 핵심 IP(지적재산권)인 '어쌔신 크리드'에는 이수족이라는 초 고대문명의 존재가 등장합니다. 게임 내 세계관에서 인류를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이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죠. '미네르바', '주노', '유피테르'. 그리스 신들의 로마식 명칭입니다. 2018년 출시된 11번째 메인 시리즈 타이틀 '어쌔신 크리드 : 오디세이'는 아예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주인공인 '미스티오스'는 메두사, 케르베로스, 미노타우루스, 키클롭스 등의 괴물과 맞서 싸웁니다.

소니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작 '갓 오브 워'는 대놓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입니다. 작중 제우스의 아들인 '크레토스'는 신들의 농간으로 가족을 잃게 됩니다. 분노에 찬 그는 두 자루의 검으로 신들의 머리통을 깨버립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일종의 인문학 고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 초반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됐는데요. 북유럽 신화가 메인스트림으로 슬금슬금 올라온 것 입니다.

물론 북유럽 신화가 갑작스럽게 부상한 것은 아닙니다. 판타지 세계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엘프, 드워프, 트롤 등도 모두 북유럽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죠. 영화 '반지의 제왕'의 원작 '실마릴리온'은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입니다.

토르의 인기로 북유럽 신화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게 됐다. 사진=어벤져스 공식 포스터


북유럽 신화가 전세계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토르' 시리즈입니다. 주인공 토르는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의 아들로 등장하는데요. 원래 두 사람은 부자관계가 아닙니다. 아무튼 영화 속 토르는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과 더불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자리매김했으니 북유럽 신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아졌죠.

북유럽 신화가 게임에 미친 영향도 알아보지 않을 수 없죠.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딴 게임 캐릭터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몇몇 요소만 뽑아보도록 하죠. 이제는 한국인의 민속놀이가 된 '스타크래프트1'에는 테란의 공중유닛 '발키리'가 등장합니다. 발키리는 발할라에서 오딘을 받드는 무장한 여성형 전사입니다. 스타크래프트의 발키리는 공대공 전용 유닛으로 대 저그전에 종종 사용됩니다.

'리그오브레전드(LoL)'에서도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가 있죠. 바로 '올라프'인데요.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쌍도끼를 휘두르는 올라프를 보면 고대 바이킹 광전사가 떠오릅니다. 올라프의 궁극기의 명칭은 '라그나로크'입니다. 올라프가 궁극기를 쓰면 자신에게 걸린 모든 군중제어기(CC)를 제거하며 6초동안 CC면역이 됩니다. 또한 지속시간동안 공격력이 크게 증가하고, 적에게 향할 때 이동속도가 증가하죠. 대신 기본 지속 효과인 올라프의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 상승이 사라집니다.

라그나로크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세계 종말의 날을 의미하는데요. 오딘, 토르, 로키 등 우리가 아는 네임드 신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합니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사건 중 최고로 처절한 사건이 궁극기라니. 상남자의 챔피언 올라프와 썩 잘 어울립니다.

▲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시네마틱 월드 프리미어 트레일러 [한글 자막]


아예 북유럽 신화가 세계관의 핵심이 된 게임도 있죠. 오는 11월 출시되는 '어쌔씬 크리드 : 발할라'는 '어쌔신 크리드 : 오디세이'의 후속작입니다. 전작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 작품은 바이킹과 북유럽 신화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시네마틱 영상을 보면 적을 도륙하는 주인공이 두건을 쓴 한 노인을 보고 놀라는데요. 잠시 후 이 노인은 사라지고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갑니다. 주인공은 이를 보고 "오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고 소리치죠. 까마귀는 오딘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을 모두 말살시킨 크레토스는 2018년 출시된 '갓 오브 워4'에서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을 만나게 됩니다. 크레토스는 신화 속에서 토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요르문간드'를 만납니다. 또한 엔딩 직전에는 천둥번개와 함께 거한이 등장합니다. '누구냐는 질문'에 의문의 사내의 망치가 보여지는데요. 묠니르를 든 토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내년 출시가 예정된 '갓 오브 워'의 가제가 '라그나로크'인 것을 고려하면 크레토스가 그리스에 이어 북유럽 신들의 머리통을 박살낼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해진 북유럽 신화와 그리스 로마 신화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신화에 비해 인간의 행동과 모습을 대변합니다. 남편인 제우스의 불륜에 분노해 내연녀 관계의 여성들에게 저주를 내린 헤라, 형 헤페이스토스의 아내인 아프로디테와 바람난 것을 들킨 아레스. 완전무결한 신의 모습과는 뭔가 차이가 있죠.

기후가 엄혹하니 바이킹 같은 광전사가 나올 수 밖에. 사진=유비소프트 제공


반면 북유럽 신화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오딘을 비롯한 주요신들은 라그나로크를 막기 위해 힘쓰는데요. 염세적이고, 종말에 맞서 싸우는 대목이 되면 살벌하고 잔혹한 장면이 많습니다. 신보다 운명이 더 우위이고, 비록 신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세계의 운명을 끊어낼 힘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북유럽 신화에는 비장함과 황량함이 느껴집니다.

그리스 지역과 게르만 지역의 기후차이가 각기 다른 신화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그리스인들은 감성이 풍부해졌고, 신들 역시 이러한 성향이 됐다는 것이죠. 반면 일 년 내내 춥고 거친 황량한 환경에서 생존해야만 하던 북유럽 사람들은 거칠고 강인해야 생존확률이 증가했고, 이러한 성향이 북유럽 신화의 비장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보다는 비극을 진정한 이야기로 봤습니다. 즉 사람은 사람이 육체적, 정신적 난관에 처하는 이야기에 더 몰입하는 편이며, 몰입할수록 이야기에 더 쉽게 공감하게 되고 더 민감해지는 것인데요. 이러한 이유로 비극적인 서사를 가진 북유럽 신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한 게임 기획자는 "최근 국내에서 북유럽 신화를 다루는 작품이 많아졌는데,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신선한 측면이 있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기자는 신화를 매우 좋아합니다. 신화 속 이야기가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게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인도 신화, 중국 신화 등 아직까지 대중문화에 직접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신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이후를 생각하니 호기심 섞인 기대감이 커집니다.

sh04khk@kukinews.com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
강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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