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산성 소환한 광화문 차벽…과잉대응? 불가피? ‘팽팽’

명박산성 소환한 광화문 차벽…과잉대응? 불가피? ‘팽팽’

기사승인 2020-10-07 06:44:01

사진=개천절인 지난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도로에 돌발적인 집회·시위 등을 차단하기 위해 경찰 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연합뉴스 제공.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정부가 오는 9일 한글날에도 개천절과 같이 광화문 광장을 원천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지만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위헌 논란까지 불거지며 7일부터 시작될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5일 서울시에 따르면 오는 9일 신고된 10인 이상 집회는 52건이다. 서울시는 모두 금지 조치를 하고 서울지방경찰청과 원천 차단을 위해 공동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유미 서울시 방역통제관은 같은날 코로나19 정례브리핑을 통해 “집회 자유와 함께 시민 생명과 안전도 우리가 지켜야 할 절대 과제”라고 강조했다.

일부 보수단체는 한글날 집회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8.15집회참가자국민비상대책위원회(이하 815 비대위)는 광화문 교보빌딩 앞 인도와 3개 차로, 세종문화회관 북측 공원 인도·차도 등 모두 두 곳에 1000명씩을 서울 종로경찰서에 신고했다. 집회는 차량 시위가 아닌 참가자가 직접 모이는 방식이다.

815 비대위는 거리두기를 지키고 마스크 착용, 발열 체크 등 규정을 준수하면서 손 소독제와 의료진, 질서유지인 등을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인식 815 비대위 사무총장은 “개천절 광화문 버스 차벽으로 세계적인 수도 서울을 세계의 코미디로 만들었다”며 “길 가는 사람을 막는가 하면 또 소지품 검사를 하고 곳곳에서 인권 침해의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글날 집회가 금지되면 또다시 서울행정법원에 가서 심판을 받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3일 개천절 집회 차단을 위해 광화문 광장 일대에는 경찰 버스 300여대를 동원한 차벽이 세워졌다. 경찰 인력들은 바리케이드를 통과하려는 행인들에게 행선지와 목적, 신분증 등을 요구하며 출입을 통제했다. 한남대교 북단과 시청역 인근 등 서울 도심에 검문소 90곳이 운영됐다. 또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1·2호선 시청역, 3호선 경복궁역에는 지하철이 정차하지 않았다.

사진= 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최인식 815 비대위 대표가 한글날 국민대회 집회신고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언제는 명박 산성이라더니 스스로 ‘재인 산성’을 쌓았다”며 이중잣대를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5년 당대표였던 시절 박근혜 정부가 경찰차벽을 동원해 시위대를 막으려 하자 트위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부가 반헌법적인 경찰 차벽에 의해 가로막혔다”고 비판한 것을 문제 삼았다.

위헌 논란도 불거졌다. 헌법재판소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지난 2009년 6월 경찰이 추모 집회를 막는다며 서울 광장 주변 차를 세우고 출입을 원천봉쇄한 것에 대해 지난 2011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경찰의 통행 제지 행위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취할 마지막 수단’이며, 별도 통행로를 확보하는 등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경찰은 차벽 설치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시위대와 경찰, 시위대와 일반 시민간 접촉을 최소화할 방법은 집회 예정 장소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주요 차도에는 경찰 차벽을 설치하는 방법 뿐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지난 5일에 이어 6일에도 재차 설명자료를 내 “경찰인력만으로 참가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경우 (차벽을) 설치할 수 있다”면서 “차벽이 아닌 경찰력으로 다수인의 집결 차단을 시도할 경우 경찰관의 감염 우려가 있다”고 부연했다.

헌재가 경찰 차벽 설치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는 지적에 대해 경찰은 “헌재가 차벽설치 자체를 위헌이라고 한 것이 아니고, ‘비례의 원칙’을 위반한 과도한 차벽설치가 위헌이라고 한 것”이라며 “2009년의 경우 12일간 차벽설치를 지속하고 통행을 통제했던 것 등이 문제가 됐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지난 3일 오후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대전월드컵경기장 인근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드라이브 스루’ 차량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보수 단체 뿐 아니라 진보 단체에서도 과잉 대응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진보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경찰이 차량 시위를 불허하자 지난달 28일 논평을 통해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경찰이 집회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대응 방침은 지나치다”면서 “경찰은 방역이라는 제약 조건에서도 집회·시위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다가오는 국감에서도 광화문 차벽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치열한 공세가 예상돼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은 광화문 광장에 차벽을 세운 것은 민주주의 후퇴라며 연일 맹공을 펼치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 차벽을 세워 집회를 막는 것이 위법인지를 두고 법조계 의견은 엇갈렸다. 법무법인 강남의 이필우 변호사는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충돌하고 있다”면서 “헌법상 어느 것이 우선한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생명권이 우선한다”고 봤다. 이어 “이미 한 번 대규모 집회가 국민 생명과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확인됐기 때문에 정부가 어느 정도 과잉 대응 할 수 있다”면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서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반정부 집회를 막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규모 집회를 코로나 감염 확산의 주원인으로 볼 수 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방역 지침을 준수하고 시간과 인원을 규제하는 등 집회 시위 자유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방법을 통해 집회가 충분히 열릴 수 있다. 그런데 차벽을 세우거나, 차량 시위도 안된다고 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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