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린 ‘구미호뎐’ [볼까말까]

홀리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린 ‘구미호뎐’ [볼까말까]

기사승인 2020-10-08 11:22:57
▲ 사진=tvN 제공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의외로 야심이 가득 찬 드라마다. KBS2 ‘전설의 고향’과 tvN ‘도깨비’의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예상했던 ‘구미호뎐’은 인간들의 세계에 나타난 구미호 이야기 대신, 구미호의 세계에 진입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구미호의 도움을 기다리기보다 한 발 먼저 치고 나가는 인간의 역동적인 서사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시청률 5.8%(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한 ‘구미호뎐’ 첫 회는 21년 만에 구미호 이연(이동욱)과 재회하는 남지아(조보아)의 이야기를 그렸다. 1999년 여우고개에서 일어난 기이한 교통사고에서 목숨을 구한 지아는 ‘도시 괴담을 찾아서’ PD로 활약하던 중 결혼식장에서 갑자기 신부가 사라진 사건을 목격하고 취재를 시작한다. 이후 익명의 제보자로 나타난 이랑(김범)의 조언에 따라 여우고개에선 21년 전처럼 다시 버스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그곳에서 이연을 목격한 지아는 그의 정체를 의심하며 뒤를 쫓는다.

tvN ‘도깨비’에서 저승사자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동욱이 3년 만에 이번엔 구미호로 변신했다. 모자만 쓰지 않았을 뿐 검은 정장을 입고 사람이 아닌 채 긴 세월을 사는 점에서 ‘도깨비’가 절로 떠오른다. 달라진 건 배경이다. ‘구미호뎐’은 사람으로 변한 여우라는 한국적인 소재에서 출발했지만, 정체를 숨기고 사람을 잡아먹으며 불멸의 삶을 산다는 점에서 서양 뱀파이어 장르에 더 가깝다. 영화 ‘킹스맨’처럼 긴 우산을 가지고 다니며 무기로 활용하거나, 추락하는 장면을 뒤집은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기는 등 ‘구미호뎐’은 지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숨기지 않는다.

‘구미호뎐’은 알고 보면 사방이 여우로 가득한 세상을 그렸다. 평범한 인간인 지아는 주변에 믿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속고 또 속는다. 인상적인 건 ‘구미호뎐’이 평범한 여성 주인공이 수동적으로 당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뛰어난 신체 능력과 기억 조작 능력 등을 가진 구미호들은 인간들의 세계를 마음대로 갖고 논다. 하지만 지아는 항상 정신을 붙잡고 의심하고 추궁하고 공격한다. 여주인공의 매력을 높이기 위한 보여주기 식이 아니다. 지아가 강력한 힘을 가진 이연이 방심한 순간 목을 노리는 마지막 장면은 ‘구미호뎐’이 무엇을 그리려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 볼까

tvN ‘도깨비’, 혹은 영화 ‘트와일라잇’에 열광했거나 신선한 장르물을 반기는 시청자들이 한 번쯤 챙겨볼 만한 드라마다. 긴가민가했을 이동욱의 팬들도 안심하고 시청하길 권한다.

 

■ 말까

인간과 비인간의 운명적인 로맨스에 몰입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은 조용히 채널을 돌리는 것이 좋다. ‘전설의 고향’ 류의 공포 장르에 취약하다면 눈을 감아야 할 장면이 많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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