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페뷸러스’ SNS 흥망성쇠를 감싸는 페미니즘의 연대

[쿡리뷰] ‘페뷸러스’ SNS 흥망성쇠를 감싸는 페미니즘의 연대

기사승인 2020-11-05 06:24:01
▲ 영화 '페뷸러스' 포스터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영화 ‘페뷸러스’(감독 멜라니 샤르본느)의 포스터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다른 성향의 세 여성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우정을 나눈다는 것. 서로 다른 머리색에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지만, 함께 웃고 있는 순간을 담은 건 충분히 상징적이다. 포스터만 봐도 영화가 인물들이 겪게 되는 갈등과 봉합의 과정을 우정의 틀 안에서 다룬다고 예측할 수 있다.

‘페뷸러스’는 절친한 사이인 로리(노에미 오파렐)와 엘리(모우니아 자흐잠) 앞에 인플루언서 클라라(줄리엣 고셀린)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SNS를 좋아하지 않는 엘리는 여성을 상품화하는 데 앞장서는 클라라를 반기지 않지만, 로리는 작가의 꿈을 위해 조금씩 클라라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로리는 클라라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하나씩 깨닫게 된다.

영화가 여성들의 갈등과 우정을 다룰 거란 예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페뷸러스’는 SNS와 페미니즘,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얽히고설키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인플루언서와 친해지며 소원해졌던 옛 친구의 소중함을 결말에서 깨닫고 우정을 이어가는 평범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갈등과 우정을 동시에 쌓아간다. 서로를 다른 입장으로 만드는 건 SNS고, 그럼에도 서로를 이어주는 건 페미니즘이다.

▲ 영화 '페뷸러스' 스틸컷

‘페뷸러스’에서 SNS 팔로우수와 인기도는 마치 돈처럼 원하는 것을 뭐든지 이룰 수 있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다. 로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 혹은 원한다고 믿는 것을 얻기 위해 클라라와 함께 SNS 스타의 길을 걷는다. 엘리는 그 대척점에서 못마땅하게 로리와 클라라를 바라본다. 영화가 SNS로 인한 흥망성쇠를 통해 인물의 성공 욕망을 성장 드라마 톤으로 그려낸다면, 페미니즘은 모든 걸 포용하는 단단한 안전망처럼 이들을 감싸 안는다. 자신의 화보 사진에 성 상품화 딱지가 붙는 걸 모욕으로 느끼고,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순간만큼은 누구도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 장면들은 페미니즘이 이들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게 한다.

영화가 갈등을 다루는 방식도 눈여겨볼만하다.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한다. 로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때로는 반감을 느끼고, 나중엔 그것조차 이해하게 된다. 극중 인물들이 매 순간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세심하게 담아낸 연출과 연기가 돋보인다. 덕분에 영화는 장르적 관습에서 벗어나 마음껏 이야기에 본질에 집중할 자유를 얻는다.

5일 개봉. 15세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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