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니프레스] 최지환 중대신문 편집위원 = 작년 여름, 휴학 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구직사이트 ‘알바몬’에서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러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일이 눈에 띄었다. 단체 관광객이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한국을 떠날 때까지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판매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업무는 사진을 찍는 것만이 아니었다. 관광객을 인솔하며 짐을 들어주고 탑승할 버스와 음식점 예약을 관리하는 등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가이드의 보조 역할을 해야만 했다. 또한 업계 관행에 따라 점원이 부족한 관광객 전용 식당에서 고객들에게 ‘자발적으로’ 서빙을 하거나 고기를 구워줬다.
하지만 이러한 부가 노동에 대한 대가는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관광객에게 사진을 파는 개인사업자이지 상품을 판매한 관광회사나 나를 파견한 협력업체에 소속된 근로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동의 대가는 둘째치고 기본적인 대우도 받지 못했다. 산재보험의 보호 없이 버스 간이 좌석에 앉아 이동해야 했고 정해진 휴게 시간 없이 고객들이 쇼핑할 때 면세점 구석에서 숨을 돌렸다. 식사는 서빙 후 서비스로 제공된 음식을 눈치 보며 먹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불확실한 수입과 업무시간에 지쳐 관광 촬영일을 그만두고 웨딩 스튜디오에 취업했다. 업계에서 꽤 유명한 업체였다. 하지만 업무 조건을 혹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주 5일, 6일 격주 7시간 근무에 월급 140만원이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으나, 실제 면접에서는 수습기간 동안은 120만원만 지급한다고 했다. 수습기간도 정해지지 않았고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뭔가 꺼림칙했고 최저시급 이하의 급여였지만, 이전보다는 좋은 조건에 1년간 근무하기로 구두로 계약했다. 이번 직장에서도 나는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실장님의 지시대로 화장실을 청소하고, 택배 포장을 하고, 고객 전화에 응대하고, 촬영을 했지만 아무튼 나는 사장님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라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이른 예식으로 조기 출근을 해도, 저녁 예식으로 밤 10시에 퇴근해도 연장근로수당, 휴일수당, 주휴수당, 야간근로수당, 연차수당 등의 수당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퇴사 전 근로계약서 작성과 정당한 대우를 요구했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바로 잘리고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지난한 소송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소송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2018년, CJB청주방송의 14년 차 프리랜서 PD였던 이재학 PD는 자신과 동료들의 처우개선을 사측에 요구했다 해고됐다. 이재학 PD는 프리랜서였지만 지자체 보조금 사업을 따오는 등 제작업무뿐 만 아니라 행정업무까지 담당했다. 하지만 해고 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패소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계 최대의 노동조합단체 국제노동조합연맹(ITUC)은 2020년 한국의 노동권지수를 5등급으로 평가하며 ‘노동권 보장이 없는 나라’로 분류했다. 중국, 라오스, 파키스탄, 짐바브웨와 같은 등급이다. ITUC는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의 권리를 더욱 제한하려 하고 있다. 이들 노동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심각한 기본권 침해에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언급했다.
주 5일제, 주 52시간근무제 등 정책으로 대한민국의 노동환경은 대폭 개선됐다. 하지만 정부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위장 프리랜서’, ‘특수고용’, ‘파견근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등 수법도 다양하다. 사업주의 꼼수와 정부의 감독 소홀에 노동자만 고통받고 있다. 나를 ‘노동자’로 대우하는 나라에서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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