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은 덜 간절한가요?…해열제 고민될 수밖에”

“고시생은 덜 간절한가요?…해열제 고민될 수밖에”

기사승인 2020-11-25 06:20:01
▲사진=24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의 모습. 정진용 기자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렸는데 수능 응시자들만 간절한가요? 다들 몇년씩 매달려서 준비해요. 저라도 시험 전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해열제 복용을 진지하게 고민할 것 같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의 국가시험 응시를 제한한 방역 당국 지침에 준비생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 지침이 오히려 감염 사실을 숨기고 시험에 응시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량진 임용단기학원’ 관련 누적 확진자는 24일 낮 12시 기준 88명이다. 감염자가 속출했지만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고시생이 두꺼운 문제집을 팔에 끼고 학원이나 독서실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고시생들은 입을 모아 “걸리고 싶어서 코로나19에 걸리는 사람이 누가 있냐”면서 “수능처럼 따로 시설을 확보해서 확진 판정 받은 고시생도 응시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윤성준(21)씨는 “본인도 원치 않게 코로나19에 걸렸을 텐데 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수능에만 예외를 두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9급 공무원 시험 응시 계획 중이라는 이소진(24·여)씨는 “몇 년을 준비한 시험인데 어떻게 기회조차 주지 않을 수 있냐”면서 “확진자 응시를 아예 금지한다면 증상을 숨기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사진=지난 2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대형 임용고시 학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가운데 학생들이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거리를 걷고 있다. 박효상 기자

고용 절벽 앞에서 고시생들의 절박한 마음을 정부가 모르는 것 아니냐는 원망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씨는 “비행기 이착륙조차 제한될 정도로 수능이 중요한 시험이라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고시생 역시 마음의 부담이 굉장히 크다. 성인이 일도 못 하고 오랜 기간 준비해도 될까 말까 아닌가. 정부가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것이 이해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은기(22)씨는 “주변에 보면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고시를 ‘한번 해볼까’ 이런 생각으로 준비하는 사람이 어딨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는 수능 이외의 시험에서 코로나19 확진자에게 응시 기회를 부여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수능의 경우 확진자와 자가격리자 모두 시험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 아래에서 교육부와 저희가 확진자와 자가격리자를 분리 시험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면서 “아직은 수능을 제외한 다른 시험에 대해 확진자에게 시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감염 의심자는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고 공지해 논란이 되기도 됐다. 오는 1월 열릴 예정인 의료인 국가시험 또한 확진자와 자가격리자까지 시험을 치를 수 없다고 안내해 응시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22일 ‘임용고시 및 국가시험 관련 코로나19 확진자 응시 불가 조항을 재검토해주세요’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임용고시 및 공무원 시험, 국가자격증, 기타 자격증 시험에서는 ‘확진자는 응시 불가’라고 안내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방역지침을 위반한 수험생이 아니라 그저 정부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마스크를 단단히 끼고 열심히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수험생이었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청원인은 “정부는 ‘입국금지’가 아닌 국가의 문을 열어두고 검역하는 것이 방역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확진자 응시불가 조항은 오히려 방역 구멍을 만든다”면서 “국가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 근거가 명백하게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지난 21일 진행된 중등교원 임용시험에서는 노량진 임용단기학원 관련 확진자 67명이 교육부 방침에 따라 응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1명의 검사 결과가 시험 종료 직후 나와 별도 시험장에서 응시함에 따라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졌다.

임용시험에 응시하지 못한 학생 60여명은 교육 당국이 확진자에게 응시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는 취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대한간호협회는 의료인 국가시험과 관련해 논평을 내고 “시험일까지 아직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데도 보건당국은 자가격리자 응시장이나 수험생 이동 수단 확보 등 행정적 이유로 자가격리자 응시를 제한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라는 명분만 내세워 감염 여부조차 불분명한 자가격리자들까지 시험 볼 자격을 박탈하는 건 행정 편의주의”라고 꼬집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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