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콜’ 이충현 감독 “예측 불가한 여성 캐릭터에 흥미를 느낀다”

[쿠키인터뷰] ‘콜’ 이충현 감독 “예측 불가한 여성 캐릭터에 흥미를 느낀다”

기사승인 2020-12-10 07:00:15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경기 가평의 외진 여관. 두 남녀가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중년의 남자가 묻는다. “처음부터 이런 말 좀 그렇긴 한데…, 처음은 확실한 거지?” 교복 차림의 여자가 그렇다고 답하는데도 남자는 쉽게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둘은 화대를 놓고 흥정을 시작한다. 몸 값이 결정되고, 남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여자가 사라진다. 수상한 전화 통화. 잠시 후 여자가 돌아오자 새로운 흥정이 시작된다. 이번엔 남자의 몸이 거래된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던 이충현 감독의 단편영화 ‘몸 값’의 내용이다. 약 14분의 짧은 작품으로 업계 관계자와 씨네필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이 감독이 첫 장편영화 ‘콜’을 들고 돌아왔다. ‘콜’은 20년의 시간차를 둔 두 여자가 전화로 연결돼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인물이 공조하는 과정을 그리지만, ‘콜’은 이들이 서로 맞선다는 점이 새롭다. 무엇보다 두 주인공 영숙과 서연을 각각 연기한 전종서와 박신혜 등 여성 배우들의 활약도 반갑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이 감독은 “‘콜’이나 ‘몸 값’ 이전에 만들었던 단편 영화 중에도 여성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삼성전자 갤럭시 S20 울트라로 촬영한 단편영화 ‘하트 어택’도 여자 주인공(이성경)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장르 영화 안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구가 커요. 기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여성 캐릭터가 기성 시스템을 흔들어놓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신모(神母)에게 학대받다 폭주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영숙을 연기한 전종서는 발군의 활약을 보여준다. 이 감독은 전종서에게 느껴지는 “어디로 튈지 모를 미스터리한 분위기” “날 것의 자유로움”에 끌렸다. 서연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그는 20년 전 일어난 사건·사고를 추적해 결정적인 순간마다 영숙에게 반격을 가한다. 박신혜는 서연을 통해 여러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안에서 보여줬던 ‘캔디’ 이미지를 통쾌하게 뒤집는다. “박신혜는 원초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장르만 바꾸면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이 감독의 판단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원작 영화 ‘더 콜러’(감독 매튜 파크힐)에서 남성이 수행하던 역할도 ‘콜’에선 여성으로 바뀌었다. 배우 이엘이 연기한 영숙의 신(神) 엄마가 그렇다. 이 감독은 “신 엄마는 영숙에서 확장된 캐릭터”라며 “무당의 능력 가운데 하나가 시간을 초월해서 뭔가를 본다는 점인데, 그것이 타임슬립과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연의 아버지(박호산),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성호(오정세), 동네 경찰(이동휘) 같은 남성 캐릭터들은 사건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채 반전 없이 퇴장한다.

이 감독은 애초 신 엄마가 퇴마를 하는 모습을 3~4분가량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해 오프닝에 넣으려고 했으나, 영화의 톤앤매너에 따라 편집했다고 한다. 대신 영화 중반에 삽입된 짧은 퇴마의식을 비롯해 신 엄마가 영숙에게 나물만 먹이는 등 여러 오컬트 요소가 영화에 삽입됐다. 신 엄마를 제거한 영숙이 게걸스럽게 치킨을 먹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퇴마 의식에서 많이 쓰는 게 닭의 피래요. 신 엄마를 제거한 영숙이 가장 먼저 먹는 게 자신을 퇴마할 때 사용한 닭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죠.”

영숙이 신 엄마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처럼 영숙도 친모와 갈등을 벌인다. 이 감독이 “영숙과 서연이 아예 다른 인물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영숙과 서연은 대립구도에 있지만, 서로에게 서로의 면이 있다. 동일한 앵글과 암묵적인 장소를 의도적으로 보여줘서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 것처럼 착시를 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원작과 달리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 데 대해선 “과거의 인물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현재도 실시간으로 작용을 받는다는 콘셉트”라고 했다.

애초 3월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었던 ‘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몇 차례 개봉을 비루다가 결국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애초 OTT를 겨냥해 제작된 영화는 아니지만, 국경을 가로질러 다양한 취향의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호재로 작용했다. 해외 관객들도 넷플릭스 전세계 인기순위 1위에 올랐던 영화 ‘#살아있다’의 박신혜와 칸 화제작 ‘버닝’ 전종서의 만남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감독도 해외에 있는 지인에게 많은 연락을 받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아니었어도 호러 스릴러 장르로 극장에서 사람을 끌어 모으기가 쉽진 않아요. 그런데 OTT로 가게 되면서, 장르적인 장벽 없이 더 많은 분들이 봐주신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도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OTT가 많이 해소해주는 것 같고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소재를 택하는 과정 등에서 훨씬 적극적으로 변하게 되는 면이 있어요. 콘텐츠들이 상호작용을 하다보면 극장에 걸리는 작품도 다양해질 거라고 믿어요.”

wild37@kukinews.com / 사진=넷플릭스 제공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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