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속 미성년 연예인 성희롱 및 폭력 논란이 불거진 지 1년이 지났다. 당시 논란으로 아동·청소년 연예인 및 연습생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공론화됐지만, 업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난달 데뷔한 여성 아이돌 그룹은 하루 14시간씩 3년간 연습하고, 데뷔 직전에는 새벽 연습도 병행했다고 한다. 이 그룹의 평균 연령은 18세로, 멤버 대부분이 미성년자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그룹 블랙핑크의 다큐멘터리 ‘세상을 밝혀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는 모든 것이 ‘경쟁’이었어”(리사) “규칙이 정말 많았어요. 제가 뭘 하든 잘못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로제)
방송사 역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Mnet ‘캡틴’이 대표적인 보기다. ‘캡틴’은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10대 청소년들이 부모와 함께 오디션을 보는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은 “참가자가 10대이기 때문에 촬영은 대부분 오후 10시 이전에 마무리하고 있다”며 “최대한 (출연자들에게) 무리가 가지 않도록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방송사는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15세 미만의 청소년을 방송에 출연시킬 수 없다.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를 받더라도 촬영 가능 시간은 자정까지로 제한된다. 올해 초 종영한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2007년생인 정동원을 새벽 1시 이후까지 생방송으로 이어진 결선 투표 집계 무대에 올렸다가 질타를 받았다. 제작진은 가족 동의서를 받았다고 해명했으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방송에 ‘권고’ 조치를 내렸다.
극한의 경쟁 속에서 느끼는 고강도 스트레스도 문제다. 2013년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하고 있는 아이돌 연습생 심리상담은 한해 100명 안팎으로 상담 신청 횟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중학생 때 그룹 투애니원으로 데뷔한 가수 공민지는 2년 전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10대 시절 우울증을 겪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캡틴’ 측은 정형외과 전문의와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구성된 ‘팀 닥터’를 운영해 참가자들을 돌보는 한편, ‘캡틴 운영단’을 꾸려 참가자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캡틴 운영단’이 일종의 멘토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참가자들이 안정된 상태에서 촬영에 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것이다.
미성년 연예인·연습생의 가혹한 근로환경을 바꾸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 2011년에는 아동·청소년 연예인 기본권 보장 조항이 만들어졌고, 지난 9월엔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가 힘을 합쳐 ‘미성년 연예인 등에 대한 권익보호 개선 방안’을 마련해 정부업무평가위원회에 보고했다. 영화진흥위원회도 ‘아동·청소년 영화인 권리존중 원칙’을 제정해 10일 발표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과거 만들어진 조항은 어디까지나 권고수준이어서 강제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했다. 최근 나온 ‘미성년 연예인 등에 대한 권익보호 개선 방안’에는 불법행위에 대한 과태료를 신설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4000곳이 넘는 국내 대중문화기획업체를 어떻게 감시·관리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아동·청소년 연예인은 노동자를 ‘갈아서’ 콘텐츠를 만드는 연예계 근로 환경과 뿌리 깊은 서열 문화로 이중고를 겪는다. ‘아동·청소년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팝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관계자가 “제도 정비와 노동 환경 및 서열 문화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팝업’이 시작한) 1년 전과 비교해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근로 환경이 특별하게 개선됐다고 보긴 어렵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비롯한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물론, 전반적인 방송 노동 환경과 근로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면서 “제작사뿐 아니라, 소비자도 윤리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픽사베이,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