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프레스] 조용한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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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의 우울과 자살…개인의 문제 아니다

기사승인 2020-12-17 20:36:01
[쿠키뉴스 유니프레스] 박희연 한성대신문 편집장 = 일상이 무너졌다. 청년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취업, 학업, 여행 등 평범했던 계획, 생활로부터 단절됐다. 채용이 없어 취직하지 못하고, 있던 일자리도 없어져 실직하고, 함께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무너진 일상은 사회의 첫발을 내딛으려고 했던 청년의 발목을 붙잡았다. 위기에 빠진 청년은 우울과 자살로 내몰렸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극단 선택에 이른 수는 잠정치로 6278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약 7.4% 감소했다. 그런데 성별로 나눠보면 다른 양상이 보인다. 남성 자살자는 전년보다 6.1% 감소했다. 여성 자살 사망자는 192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1%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여성 자살률만 증가한 것은 1987년 통계 작성 후 최초다. 시도도 크게 늘었다. 1월~8월까지 고의적 자해로 진료를 받은 여성의 치료 건수는 1076건으로 전년 대비 35.9% 증가했다. 특히 자살을 시도한 사람 3명 중 1명은 20대 여성이었다.

정부는 20대 여성 자살률 급증의 원인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 경제적 어려움, 취약계층으로서 고용불안, 돌봄 부담 누적 등을 꼽았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분석한 여성 고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여성 실업률은 3.4%인데, 그중 20대 여성의 실업률은 7.6%로 가장 높았다. 맞벌이 가정에서 여성의 돌봄 시간은 5시간 3분에서 6시간 47분으로 증가했다. 남성의 경우 홑벌이는 29분, 맞벌이는 46분씩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불씨를 댕겼을 뿐, 진짜 원인은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에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OECD 국가 내 여성 차별 수준을 지표화해 발표하는 ‘유리 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8년 연속 꼴찌다. 특히 임금 격차, 간부직 비율, 이사 비율 항목에서 압도적으로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상시적 고용불안이 코로나블루와 뭉쳐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여성은 어렵게 인턴,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하더라도 사회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밀려났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대부분의 여성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전환됐으며, 2008년 경제위기에는 시간제 노동자로 밀려났다.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대 여성의 우울과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변하지 않는 남성 중심의 사회, 여성을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 여성 대상의 범죄가 증가하는 사회. 이런 사회 문제가 모여 20대 여성을 서서히 조용한 절망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성차별에 분노하는 여성이 늘었지만, 사회는 20대 여성의 분노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 여성의 분노를 의지박약, 나약함 등의 문제로 치부했다. 무관심한 사회 때문에 여성은 분노하기보다 참는 것을 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리는 분노가 소위 ‘여성스럽지 않은 감정’이라고 배웠다. 항상 양보하고 상냥해야 한다고 인식해 왔다. 그렇기에 여성의 분노가 어디에, 얼마나 억눌러져 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다.

정부는 처음으로 20대 여성을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했다. 또한, ‘여성 자살 예방 상담 강화’, ‘심리, 정서 안정을 위한 자조 모임 및 커뮤니티 활동 지원’, ‘청년 여성 및 경력단절 여성 지원제도’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정책이 20대 여성의 자살률을 낮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단기적으로 상담이나 심리·정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처방이나, 모임 등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주겠다는 식의 대응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통계 수치에 잠깐 놀라 땜질식 해결방안을 제시하기보다 근본 원인을 물어야 한다. 정작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는 그대로인데 예방이 될까.

코로나19의 여파로만 해당 문제를 한정 짓지 않고 사회 전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가정에서 일상에서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여성의 자살률은 줄어들 것이다. 아직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20대 여성이 스러지지 않게 그들의 분노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분노가 힘을 발휘할 때까지 말이다.

[유니프레스]는 쿠키뉴스와 서울소재 9개 대학 학보사가 기획, 출범한 뉴스콘텐츠 조직입니다. 20대의 참신한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이면을 가감 없이 전하겠습니다.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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