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년 12월 19일, 66페이지짜리 단편으로 출간된 후 170년이 더 지났지만, 이 소설은 200여 편의 영화뿐만 아니라 그림책, 연극, 만화, 애니메이션 등 여러 형태로 전 세계인들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브라이언 데스몬드 허스트 감독, 알라스테어 심 주연의 영화 <크리스마스 캐롤(Scrooge - A Christmas Carol, 1951)>은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는 고전작품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인 피도 눈물도 없는 구두쇠 스크루지. 한 명뿐인 점원 ‘밥’은 한겨울에도 석탄 한 덩어리조차 마음대로 난로에 넣지 못해 촛불에 손을 녹여야 했을 뿐만 아니라,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으며, 크리스마스 휴가에는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자선단체의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세금을 냈으므로 거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하나뿐인 조카 프레드의 크리스마스 초대조차도 응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크리스마스 이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 스크루지에게 7년 전에 죽은 동료인 말리의 유령이 나타난다.
스크루지 못지않은 구두쇠였던 말리는 사후에 탐욕의 쇠사슬을 온몸에 감고 세상을 떠도는 벌을 받고 있었다. 그는 과거․현재․미래의 유령이 찾아올 거라며, 현재와 같이 살면 죽은 후 자기와 똑같은 신세가 될 거라고 경고한다. 과거(누이의 죽음, 돈에 대한 집착, 돈만 아는 그의 곁을 떠난 애인) 그리고 현재(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조카와 그의 아이들, 충실한 밥), 마지막으로 미래(한평생 자신 만을 위해 살았던 자신의 비참한 죽음)의 모습을 보게 된다. 비로소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새사람이 된다. 그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과거의 스크루지’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는지 뒤돌아보게 하고, 비록 과거에 그렇게 살았다 할지라도 아직도 우리에겐 희망적인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죽은 친구가 보내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것이다.
구두쇠(守錢奴, tightwad)는 돈이나 재물을 쓰는데 몹시 인색한 사람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지독한 구두쇠를 ‘자린고비’라 한다. 한 구두쇠가 부모 제사때 쓰고 그때그때 태워 없애야 할 지방(紙榜)을 태우지 않고 여러 해 되풀이해 쓰는 바람에 지방이 낡을 대로 낡았다. 이에서 지방에 쓰인 아비 ‘고(考)’ 자와 어미 ‘비(妣)’ 자가 절었다는 데서 ‘저린고비’에서 ‘자린고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원이야 어떻든 근검절약을 강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스크루지도 근검절약형의 인물이었으며, 합법적인 틀 안에서 돈을 벌은 성실한 구두쇠였다. 그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사람들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비생활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인색하였다. 또한, 소외계층에 대한 기부, 복지 시설 건설 등의 사회공헌활동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후에 개과천선하여 진정한 경영자로 거듭나게 된다.
근검절약의 정신은 건전한 사람들이 갖춰야 할 미덕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개과천선하기 전의 스크루지와 같이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메리카 은행가협회에서 발행한 '개인의 금전관리'란 책자에 이런 글이 있다. “돈을 좇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다. 돈을 간직하고만 있는 사람은 구두쇠이다. 돈을 낭비하는 자는 도락자이다. 돈은 얻지 못하는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이다. 일하지 않고 돈을 얻는 사람은 기생충이다. 그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꿈이 없는 자이다. 그리고 일평생 땀흘려 일하여 돈을 모으기만 하고 삶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이다.”(송길원, “돈의 노예 되지 말자”, 국민일보, 1993. 5.31. 24면) 그래서 인지 “최고로 행복한 구두쇠란 자기가 아는 친구를 전부 저축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로버트 E. 셔우드의 말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오늘 우리는 스크루지를 통하여 ‘없는 자에게는 희망을, 가진 자에게는 반성의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